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어쩌다가… 한국서 처벌, 美서 또 실형
알림

어쩌다가… 한국서 처벌, 美서 또 실형

입력
2010.01.11 01:13
0 0

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한국 기업인이 국내에서 처벌받은 뒤, 미국에서 같은 범죄로 체포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중처벌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정부 대응이 주목된다.

10일 법무부와 미군 성조지(紙)에 따르면, 미 텍사스주 댈러스 법원은 지난해 11월 뇌물공여와 범죄공모 등 혐의로 기소된 국내 S사 정모(45) 대표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만달러를 선고했다. 정씨는 2001~2006년 주한미군이 발주한 2억600만달러 규모의 인터넷 서비스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미 육ㆍ공군교역처(AAFES) 직원들에게 청탁과 함께 15만달러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뇌물은 현금과 주식, 유흥접대, 여행 등의 형태로 제공됐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AAFES는 미군 기지에 물품을 공급하며, 직원들은 공무원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앞서 한국 검찰이 동일 사건으로 정씨를 기소했다는 점이다. 정씨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항소한 시점인 2008년 11월 업무회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정씨가 미 연방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에 회부된 가운데, 한국 사법부는 정씨의 벌금형을 확정했다. 정씨로선 하나의 범죄 혐의에 대해 2개 국가에서 처벌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물론, 국가 간에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한 번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원리)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도 국가 간에 '이중처벌 금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국내 법원의 한 판사는 "외국 판결은 국내 당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각 나라가 사법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미 사법부의 이번 선고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미 연방법은 자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외국인의 경우 해당국 처벌과 관계없이 자국이 처벌 관할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뇌물방지협약은 두 개 국가에 걸친 뇌물사건의 경우 당사국 간의 상호협의를 통해 사건을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이 협약에 따라 협의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한 채 사법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이번 사건은 국가 간 신의칙(信義則)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미국 기업인이 한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다면, 한국 정부가 정씨처럼 이중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정씨의 1심 선고 두 달이 다되도록 한국 정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자국민 보호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정씨가 체포된 이후 미 법무부에 정씨의 사법처리에 대한 한미 상호협의와, 정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5차례나 보냈다고 해명했다. 외교통상부도 외교 채널을 가동해 정씨 석방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씨에게 구형량인 징역 30년보다 낮은 징역 5년이 선고된 것은 이런 노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이번 이중처벌 사례는 해외 뇌물 공여를 엄하게 처벌하는 국제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며 "해외 영업을 하는 우리기업들에도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AAFES 매점 관리자로서 정씨한테 금품을 받은 미국인 헨리 리 할러웨이씨는 이달 7일 미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추징금 7만달러, 벌금 5,000달러를 선고받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