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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종시에 문화예술은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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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종시에 문화예술은 왜 없나

입력
2010.01.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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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서북부에 빌바오(Bilbao)라는 도시가 있다. 인구 35만 정도의 바스크 지방 중심도시로 원래는 스페인의 대표적 공업도시였다. 주변 철광산을 배경으로 제철과 제강 산업을 비롯해 금속 기계 화학 유리 도자기 담배 조선업 등이 발달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1980년대부터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예술도시 빌바오'의 기적

바스크 주정부는 빌바오를 몰락의 늪에서 구하기 위한 방도를 연구하였다. 그것은 바로 문화 예술이었다. 우중충한 공업도시를 해맑은 예술문화 도시로 바꿀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강타했던 것이다. 그들은 곧 행동에 들어갔다. 1997년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 최고의 사립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빌바오에 유치하였다.

빌바오에는 기적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빌바오로 몰려들었다. 한 해 5백만 명의 관광객이 빌바오를 찾고 있다. 빌바오는 이제 더 이상 퇴락한 공업도시가 아니다. 건축이나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빌바오에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처럼 되었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를 이렇게 바꾸어버렸다. 미술관의 소장품보다 미술관 자체가 더 큰 관광거리가 되었다.

가까운 일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 남부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에 있는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원래 구리(銅) 제련소가 있던 낙후한 공업지대였다. 그러나 한 기업가가 섬 절반을 구입한 후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에게 의뢰하여 1992년 미술관과 호텔을 건립하였다. 2004년에는 땅속에 '지중미술관'도 만들었다. 이제 이 오지의 섬은 1년에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세계적 관광 명소가 되었다.

우리의 세종시는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 청사를 옮기는 대신 기업도시, 과학도시, 교육도시, 레저도시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만 난무하고 있다. 조만간 수정안을 발표한다니 그 때는 궁금증이 풀리리라고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예술과 문화 도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선진국을 목전에 둔 우리도 이제 미래 코드는 예술과 문화일 수밖에 없을 텐데.

미국은2차 세계대전 뒤 세계의 문화중심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기 위해 CIA까지 동원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에서 꽃피울 수 있었다. 유럽사람 일색이던 세계 유명화가 명단에 이제는 미국인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중국 작가들의 세계시장 진출은 놀라울 정도이다. 베이징 시내에는 커다란 공장들이 있던 지역에 다산쯔(大山子) 798 이라는 대규모 예술단지가 조성되어 예술가들로 하여금 마음껏 독창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있다. 또 베이징 교외에는 쑹좡(宋庄)이라는 예술인 마을이 조성되어 예술관련 산업까지 붐을 이루고 있다.

우리도 문화예술의 부흥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문화예술이야 말로 이 정부가 명운을 걸고 있는 녹색산업의 표본이다. 세종시도 세계적 미술관이 들어서고, 예술인 마을이 들어서고, 문화인들이 정착하고, 관광객이 몰려드는 그런 컨셉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야

기업이 들어가고 첨단과학이 들어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인간적이고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도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른바 자족도시라는 것은 바로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이다. 항상 사람이 찾고, 찾고 싶어하는 그런 도시가 바로 자족도시 아닐까.

이런 도시는 문화예술로 접근하는 것이 정석이다. 문화예술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세종시도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 세종시를 동양의 빌바오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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