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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신년특집/ 앙드레 김의 새해 인사 "할일이 너무 많아 아플 수가 없어요,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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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신년특집/ 앙드레 김의 새해 인사 "할일이 너무 많아 아플 수가 없어요, 너무 감사해요"

입력
2010.01.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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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세밑에 작은 홍역을 치렀다.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면서 언론사로부터 확인전화가 쇄도한 탓이다. 새해로 일흔 다섯이 되는 고령인데다 몇 해전 한 차례 대수술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이런저런 소문도 무리는 아니다.

앙드레 김은 "너무 걱정들 해주시니 오히려 송구스럽다"면서도 "다리가 다소 불편할 뿐 아직은 할 일이 너무 많아 아플 수가 없다"며 밝게 웃었다.

겸사겸사 연륜 속에서 해마다 아우라를 더해가는 그를 30일 흰 눈 소복이 쌓인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한국일보 독자들에게 거장의 신년인사를 전하는 자리가 됐다.

일은 삶의 활력소, 휴일 적은 경인년 좋아

앙드레김 아뜰리에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귀족 체험이다. 온통 하얀색 건물에 아르누보 스타일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샹들리에들이 광채를 뿜어내고 흰색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부신 크리스털 테이블웨어들, 석고상들, 아트북들이 유럽의 왕실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무엇보다 왼쪽 가슴에 앙드레 김의 흰색 문장을 붙인 깔끔한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여직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들고나는 고객들을 대접한다.

아뜰리에를 나설 때쯤 현관 밖까지 줄지어 나와 배웅하는 호사를 받고 나면 '과연 앙드레 김'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엄격한 의전은 평생 '엘레강스'를 추구해온 노장의 완벽주의를 엿보게 한다.

검은색 정장차림의 직원들 사이라 유독 하얗게 돋보이는 앙드레 김은 "일은 내 삶의 활력소라 새해가 너무 기다려진다"고 했다. 새해가 되면 달력부터 챙겨 공휴일이 적으면 쾌재를 부른다는 그다. 마침 경인년은 공휴일이 적다.

"2월에 오랫동안 구상했던 명품 모피컬렉션을 선보이고 3월엔 중국 베이징에서 대규모 초청패션쇼가 있습니다. 4월엔 지난 달 오픈한 앙드레 김 제2 디자인 아뜰리에에서 봄여름컬렉션도 개최하고요. 아, 그리고 한국도자기에서 앙드레 김 웨딩컬렉션도 출시해요.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패션은 유행이 아닌 예술이다

패션은 물론 산업디자인 분야까지 넘나드는 한국 패션사의 전무한 스타이지만 '앙드레 김 패션'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크게 갈린다.

한국 패션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동시에 패션의 본질인 변화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본인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노장의 신념은 명확하다. '패션쇼=종합예술'이라는 믿음이다.

"유행 창조도 중요하지만 저는 패션을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클래식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을 원해요. 톱스타들을 모델로 세우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패션과 음악, 무대미술, 조명 등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국인이자 아시안으로서 아시아왕실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일에 기쁨을 느낍니다. 유행을 좇는 것은 제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아요."

1951년 전시수도 부산의 추억- 소년, 패션과 만나다

앙드레 김의 국제복장학원 선배인 한 원로 디자이너는 "언젠가 청년시절 앙드레 김의 자취방 창문 너머로 방안을 슬쩍 구경했는데 분홍색 커튼 사이로 넓적한 수반에 물을 채우고 장미 꽃봉오리를 동동 띄워놓은 것을 보고 감탄을 연발했다"며 "당시 이미 미에 대한 감각이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앙드레 김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이미 아름다움에 심취했다고 말한다. 어린시절 꿈은 예술가. "아름다운 음악이나 문학,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디자이너가 안 됐다면 시인이나 수필가, 화가가 됐을 겁니다."

예술에 몰입하던 그를 패션과 만나게 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었다. 1951년 16세에 가족을 따라 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피란을 갔고 거기서 수많은 유럽영화들과 접했다.

실바나 망가노, 엘리자베스 테일러, 지나 롤로브리지다, 록산나 포데스타, 비비안 리 등 영화 속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서정적인 로맨스와 아름다운 의상들은 감수성 예민한 소년의 가슴을 흔들었다.

"그때 아, 나는 의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참 행운이었어요."

그는 62년 첫 패션쇼를 통해 디자이너로 데뷔, 올해로 48년 패션인생을 맞는다.

후계자는 다국적 아트디렉터 영입 고려

평생 현역을 고집하는 디자이너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후계자 문제도 신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경영권은 가족에게 물려줘도 디자인의 후계는 가족이 아닌 외부 영입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패션시장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수준도 높아지는 만큼 앙드레 김 브랜드의 후계자는 글로벌 감각으로 무장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비통을 미국인 마크 제이콥스가 이끌고,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도 영국인 존 갈리아노가 하죠. 이젠 패션산업이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이고 한국 패션의 글로벌화도 빨라지는 만큼 해외의 유능한 아트디렉터를 영입하는 것도 가능해요. 물론 아직은 제가 더 활동해야지요."

흰옷은 체형 커버 차원, 사이클과 조깅 즐겨

트레이드 마크인 흰 옷은 올해로 33년째 한결같이 입고 있다. 흰색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시사철 흰옷만 입기로 한 건 다소 짧은 다리 등 체형의 결점을 커버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시로 터지는 건강 악화설에는"아직은 문제 없다"고 자신한다. 다리가 아파 걷기가 다소 불편하고 청각 기능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아침 5시반에 일어나 17가지 신문을 훑어보고 매일 출근해 일한다.

정신건강을 위해 일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이 평생 신조다. 다만 늘 앉아서 일하다 보니 하체가 약해져 일주일에 두세 번은 사이클과 조깅에 나선다.

이수경 정경호 주연의 드라마 '천만번 사랑해' 광팬이고 시간이 나면 EBS TV의 오지탐험이나 해외여행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미지의 세계는 그가 늘 동경하는 곳이다.

"예전엔 화려한 유럽문화에 심취했지만 요즘은 미얀마, 라오스, 부탄왕국 같은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영성이 깊은 나라들에게 매혹을 느낍니다. 특히 부탄왕국은 고구려장군 고선지의 후예들이 세웠다는 설도 있어서 더 가보고 싶고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패션은 물론 제 평생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한국일보 문화사업에 감동, 고갱 전시도 개최했으면

소문난 문화예술애호가인 앙드레 김은 최근 몇 년간은 한국일보의 미술 전시로 인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단다. 샤갈 피카소 반 고흐 등 한국일보가 단독 개최한 세계적인 전시를 빠짐없이 참관하면서 독자들을 위해 최상의 문화를 소개하려는 노력에 감동했다는 소리다.

앙드레 김은 "고갱의 타히티 그림들도 한국일보 전시를 통해 볼 수 있게되면 좋겠다"며 "수준 높은 문화예술의 전달자 역할을 계속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사진=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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