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은 쇠가 아니다. 화재와 가뭄을 몰고 오는 나쁜 용의 이름이다. 박지원의 책 <열하일기> 에 '강철이 나타나면 가을도 봄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박지원이 살던 농경시대에 봄이란 훈풍이 부는 따뜻한 시절이 아니다. 작년 가을에 추수한 양식은 다 떨어졌는데 보리는 익기 전이라 굶주림을 견뎌야 하는 계절이다. 반면 가을은 없던 사람도 밥좀 먹어보는 철인데, 강철이 나타나면 가을조차 흉년이 들어 봄처럼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열하일기>
연초부터 연말까지 재개발 죽음
올 한 해는 사계절이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가혹한, 강철의 계절이었다. 1월 서울 용산재개발에 맞서 세입자의 권리를 지키려던 이들과 진압하던 경찰까지 6명이 불구덩이 속에서 세상을 떠나더니 12월에는 서울 용강동 시범아파트 철거에 항의하던 예순여섯살의 주민이 자살을 했다. 정부가 개인의 무한이익추구를 방치하다 못해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들의 권리만을 억누르려 강제진압한 결과가 용산참사라면, 용강동 사건은 공원을 만든다고 서민아파트를 겨울에 강제철거하는데 지방정부가 직접 나섰다가 벌어진 일이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예산까지 대폭 줄인 정부는 또한 올 여름에는 2년이나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옮겨주라는 법의 실행도 앞장서서 막았으니 이 시대의 강철은 정부일까.
올 한 해가 가난한 사람에게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가 늘어나면서 선택된 이들만 더 비싼 학비를 내고서 특별한 교육을 받는 것이 장려되고 일반 학교에서는 밤늦도록 학생들을 잡아두고 강제공부를 시키는 것이 사교육을 막는 이상적인 방안으로 국가지원을 받게 됐다. 법을 어긴 사람들이 당당하게 공직자로 임명되는 반면 민주사회의 당연한 권리로서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은 징계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도심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수사는 죽음으로 몰고갈만큼 가혹했으면서도 뇌물사건에 연루된 전직 국세청장은 해외도피를 방치한다. 용산참사의 수사기록을 밝히라는 판결조차 무시하는 검찰이 있는가 하면 후배들의 재판에 개입한 대법관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해서 10년 동안 끌어올렸던 민주주의가, 엄격한 공직의 기준이 쉽게 무너져내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강철이 아니라 산타를 자처한다. 대통령은 재래시장을 다니며 서민들을 껴안는다고 하고 대학생들이 학비를 대출받아 공부를 하고 졸업후 갚는 제도가, 서민을 위한 무담보소액대출기금(미소금융재단)이 정부주도로 탄생했다는 것을 자랑한다. 강남의 '포장마차'에서 100만원 매상은 올려줄지언정 대기업이 동네 구멍가게 진출하는 것은 막을 뜻이 없고, 대학생 학자금 대출제도는 예산조차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는 점, 미소금융재단은 이미 활동중인 무담보소액대출기금을 소외시켰고 대기업에게 준조세를 강요한 셈이라는 논란도 묻혔다.
외고를 없애겠다느니 5세에 학교를 입학시킨다느니 정부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의제를 계속 쏟아내고 지리멸렬한 야당이 번번히 정부의 의제에 휘둘려 가는 동안 세종시 축소와 4대강 개발이라는, 이 정부의 2대 업적은 착착 진행된다. 외고를 없애겠다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유일하게 바람직한 교육대안은 결국에는 실현되지 않았다.
야당이 한명숙 전 총리 구하기에 힘을 쏟아붓는 사이에 4대강 개발 예산은 국회에서 한 고비를 통과했다. 4대강 개발 계획이 확정되면 잘린 복지예산을 되돌리는 일은 물건너 간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내년도 강철의 계절이 되는 것이다. 4대강 개발 계획은 지역주민들에게는 지역을 살릴 산타의 선물이다. 민주당 의원이 국회 농수산위원회에서 예산을 통과시킨 것도 이때문이다.
복지 예산 빼돌린 지역 개발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산타는 환상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실제로 돕고자 했던 니콜라스라는 성인을, 광고회사가 지극히 상업주의적인 목적에서 크리스마스에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는 존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풍족한 자에게 축복인 산타의 겨울이 모든 이를 배곯게 하는 강철의 사철이 되는데도 4대강 지역에서는 정말 이걸 반기고 싶은가.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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