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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주)금영 콘텐츠연구소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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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주)금영 콘텐츠연구소 제작팀

입력
2009.11.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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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 마을회관, 두메 산골 이장 댁 안방, 모 대학 총장의 공관 접견실까지.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빠짐 없이 볼 수 있는 네모난 기계.

20년 만에 만난 어릴 적 소꿉친구들과도 금새 친해질 수 있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은 충격도 달랠 수 있고, 일 못한다고 꾸지람하는 직장 상사 앞에서 점수를 만회할 수 있는….

이처럼 요술 부리듯 온 국민을 울고 웃기는 것이 '노래방 반주기'이다. 하지만 반주기를 만드는 주인공은 마법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선곡부터 온라인 업데이트까지 노래방 반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궁금하다면 국내 최대의 노래방반주기 제작 회사 금영의 콘텐츠연구소 김명환 이사, 이석현 선곡팀장, 강재구 엔지니어의 일상을 따라 가면 된다.

선곡, 모두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라

이석현 선곡팀장의 별명은 '조용한 남자'이다. 그의 생활은 답답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 만나는 걸 꺼린다.

심지어 회사 사람들과도 대화가 없다"는 게 김 이사의 평가. 어떻게 해서든 이 팀장의 눈에 들려고 매니저, 기획사 관계자 들이 쉴새 없이 찾아온다고. 심지어 자신이 만든 노래가 노래방에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애절하게 담은 친필 편지를 몇 통이나 보내는 아마추어 가수들도 수두룩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쏟아져 나오는 노래 중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것만도 1,000곡이 넘는다. 이 중 노래방 기기에 들어가는 곡은 140여 곡 남짓. 7대 1 가까운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회사 입장에서도 어떤 곡을 고르느냐는 노래방 기기의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선곡의 기초 자료는 방송 순위, 음반 판매량, 음악 사이트의 인기 곡 순위로 매겨진다.

"가요 관련 순위 집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실시간으로 자료를 받는다"는 게 김 이사의 설명.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 일 뿐. 결국 선곡은 사람의 귀에 의해서 결정 나는데 그 절대 권력은 이 팀장에게 있다. 인터뷰 중에도 이 팀장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 뒤 먼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팀장은 남들이 박자, 음정, 리듬을 덧씌워 만든 노래를 분해하는 일을 한다. 그의 선택 기준은 딱 하나. 노래방에서 애창될 수 있는 노래이다. 당연히 쉬운 리듬과 박자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

힙합, 랩 등은 몇 년 전부터 가요계의 대세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래방 곡목으로 선정될 확률은 썩 높지 않다고 한다. 그는 "많은 신곡들이 젊은 세대를 위한 노래"라며 "하지만 노래방은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하기에 골고루 선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어지간한 노래는 한 번 들으면 '노래방에서 뜰지 안 뜰지' 감이 온다고 한다.

선곡 팀장이나 김 이사는 본의 아니게 돌부처 행세를 해야 한단다. 노래방 기기에 수록되느냐 못하느냐는 그 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척도가 됐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선정되도록 하는 팬들의 압력(?)도 거세다.

회사 홈페이지에 "어떤 노래를 올려달라"는 요청이 많을 경우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위해 팬들의 '집단 클릭'도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김 이사는 "특정 노래가 갑자기 뜰 경우 추적을 통해 순수한 투표인지, 불순한 뜻이 담겨 있는 지를 어렵지 않게 가려낸다"고 귀띔한다. 반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담기지 않았을 때의 항의도 대단하다. 어지간한 유혹과 비난을 꿋꿋하게 견뎌야 하는 게 이들의 운명이다.

절대음감들이 모여 실제 음 재현에 도전한다

이 팀장이 질 좋은 재료를 고르는 일을 한다면 강재구 엔지니어는 요리사 역할이다. 동료 엔지니어들이 CD나 MP3 등 음원을 듣고 계 이름과 리듬을 뽑아내면(악보를 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실제 반주자와 코러스가 만든 음을 재료 삼아 믹싱과 마스터링을 진행한다. 여러 음을 섞는 다음 최대한 실제 음에 가깝게 매끄럽게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이다.

최고 시청률의 드라마 선덕여왕 마스터링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그는 요즘 낮에는 노래방 반주, 밤에는 드라마 음악 만드느라 잠 잘 새도 없단다. 그 뿐만 아니다. 반주 음악 제작에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이 가수들 음반이나, 영화ㆍ드라마 O.S.T(Original Sound Track), 광고 음악 등을 만드는 '투잡(two job)'족들이다.

반주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출고관리팀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가사, 영상 제작을 비롯해 최종 점검을 거쳐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선을 보인다. 현재 온라인 반주기만 7만 여 개.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곧바로 업데이트가 이뤄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10곡 넘는 노래를 작업해야 한다.

김 이사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음원ㆍ음향 제어 기술 등 여러 기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기술 집약적 제품"이라며 "물론 그 첨단 기술도 마무리는 사람의 귀와 손에 의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노래방 반주기를 만드는 이들은 노래방을 즐겨 찾는지 물어 보았다. "거의 가지 않는다", "내 작업이 잘 됐나 종종 가서 들어본다", "경쟁사 반주기가 어떤가 가본다". 대답은 제각각.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은 노래방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공통된 업보인 모양이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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