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포이즌 필'(독약처방)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재계는 일단 환영하는 모습이다.
기업이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위기에 처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싼 값으로 신주를 발행,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포이즌 필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7월 제3차 민ㆍ관 합동회의에서 도입을 약속한 만큼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
그러나 그 동안 포이즌 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만큼 기업들로서는 이제 안심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다. 반면 일각에선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출석주주 3분의2 이상, 발행주식총수 3분의1 이상 찬성)를 통해서만 포이즌 필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너무 까다로운 조건이란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실 적대적 M&A 위협을 크게 느껴왔다. 외환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너무 커진 것이 화근이다.
2004년 거래소 상장 기업의 외국 주식 비중은 42%나 됐다. 최근에는 30%로 낮아졌지만 대표 기업들의 외국인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비중은 47%, 포스코는 49%나 된다.
실제로 1999년부터 10년동안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적대적 M&A 35건 중 14건이 성공했다는 게 전경련의 분석이다. 경영권을 지켰다고 해도 우리 기업들은 상당한 내상을 감수해야 했다.
투기적 외국 자본의 위협에 시달린 SK의 경우 내부 유보율이 2004년 930%에서 지난해엔 2,920%로 높아졌다. 그 만큼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없었다는 얘기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포이즌 필 도입이 적극적인 투자 환경 조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실제 투자로 이어질 지 여부 등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재계 일각에선 포이즌 필 발행 절차가 너무 복잡,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없지 않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정관에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한 뒤 이사회 결의로 기존 주주에게 무상으로 신주 인수선택권을 줄 경우 사실상 외국인 지분이 절반에 가까운 대표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지배주주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개혁연대 부설 경제개혁연구소의 김우찬 소장(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은 "해외에서도 포이즌필을 도입한 기업의 경우 경영권 공격과 방어의 공정성을 떨어뜨려 오히려 기업가치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특히 이사회가 지배주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국내 기업의 경우 포이즌필은 소액주주 이익보다는 지배주주의 편익을 위해 오ㆍ남용되기 쉽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기대감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포이즌 필은 기업에겐 골키퍼와 같은 존재"라며 "이제 골키퍼가 생긴 만큼 마음껏 공격을 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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