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대전 '무지개 프로젝트' 이후 변화 보니…/ 달동네가 공원온 듯 '말끔 변신'…

알림

대전 '무지개 프로젝트' 이후 변화 보니…/ 달동네가 공원온 듯 '말끔 변신'…

입력
2009.09.18 06:45
0 0

16일 오후 대전지역 최대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인 동구 판암동 주공 4단지(2,415세대) 내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신문 '판암골 소식'의 주민기자들이 '무지개 프로젝트'를 화제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등굣길에 아이들이 술 취해 길바닥에 드러누운 아저씨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제 보기 드문 일이 됐잖아요." "툭하면 싸움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했는데 요즘은 싸움 구경 재미가 사라졌어요."(웃음)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은 무지개 프로젝트 이후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곳곳에 오물과 쓰레기가 버려져 지저분했고, 아침부터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들과 해가 지면 싸움소리가 그칠 날이 없던 모습은 이제 과거의 일들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찾아간 동네는 입구부터 꽃나무와 멋진 돌탑이 세워져 있어 공원처럼 보였다. 마을 앞길은 영화배우 권상우 등 대전 출신 유명인들의 사진과 핸드 프린팅 등으로 장식한 '스타의 거리'가 조성돼 다른 동네가 부러워하는 명물이 됐다고 아이들이 자랑했다.

아파트 앞 동신중학교도 확 달라졌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운동장은 초록의 인조잔디구장으로 바뀌었고 우레탄트랙도 설치됐다. 송은주(14ㆍ2학년)양은 "시에서 우리 학교 옆에 멋진 '무지개도서관'을 곧 지어준다고 해서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작은 기적'이 벌이진 곳은 또 있다. 판암동에서 시작된 무지개 프로젝트는 이듬해 법동과 월평동 영구임대아파트, 그리고 지난해에는 대동, 부사동, 문창동 등의 달동네로 확대되었다.

바뀐 건 겉모양만이 아니었다. 이를 채우는 소프트웨어도 다양했다. '무지개 튜터'도 그 중 하나이다.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무료 과외 봉사자들을 지원해주는 무지개 프로젝트 사업의 하나이다. 동구 대동에 사는 민지(가명ㆍ12ㆍ초등6년)를 가르치는 박지윤(31)씨는 대전시청 공무원이면서 민지에게 무료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민지 엄마는 "아이가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무지개 프로젝트는 시가 예산지원을 하지만 민간단체와 자원봉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민ㆍ관 공동사업이란 점이 특징이다. 대동의 경우 시의 예쁜 동네 만들기 사업 공모에 주민들이 계획을 세워 제출하고, 이에 맞춰 공공미술작가가 투입돼 담장과 굴뚝, 계단, 전봇대 등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고 조형물을 설치했다.

주민들의 봉사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무지개 프로젝트로 인해 주민들의 마음이 열리고 소속감이 생겼다는 걸 보여준다. 판암동에서는 새터민 30여명이 '푸른하늘' 봉사단을 만들었다. 지체장애인 김장영 씨는 휠체어장애인 봉사단원이다. 김씨는 "장애인이라고 도움만 받다가 독거노인 등에게 도시락도 전달하고 마을 축제와 행사 때 음료수를 나눠주는 봉사를 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대전시 윤종준 복지정책과장은 "환경이 개선되면서 '우리동네'라는 공동체의식도 커져 주민들간의 간섭과 협력이 만들어진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 무지개 프로젝트란

지금까지의 도심 재개발이 원주민을 몰아내는 방식의 '철거와 재개발'이라면, 무지개프로젝트는 원주민이 그 자리에서 더 잘 살도록 종합적인 환경을 고쳐주는 '동네 재생'이다.

대전시는 2006년 9월 1단계로 지역 최대의 영구임대아파트인 동구 판암동 주공3ㆍ4단지를 선정, 무지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어 2007년 2단계로 법동ㆍ월평동 영구임대아파트, 지난해 3단계로 달동네인 대동, 부사동, 문창동으로 사업지역을 확대했다. 이 지역들은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시 평균 보다 2배에서 최고 5배나 높은 소위 '가장 가난한 동네들'이다.

시는 도심 곳곳에 흉물처럼 버려져 있던 이 지역에서 주거환경 개선부터 시작했다. 나아가 도서관을 세우고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등 총 140개 사업에 987억원의 예산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복지, 건축, 교통, 교육, 문화예술 등 사실상 시청의 모든 부서가 참여하는 프로젝트팀을 구성, 운영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무지개 프로젝트에 대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새로운 도시 개발 실험"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전대 곽현근(행정학) 교수는 "영국에서 2001년부터 빈곤 지역 88곳을 선정, 추진하고 있는 재생 프로젝트와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며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그러나 "도시 재생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짝 행사에 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우기자 aurevoir@hk.co.kr

■ 박성효 대전시장 인터뷰

"일부에서는 막대한 시민 세금을 달동네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려졌던 곳이 새롭게 변신하면서 결과적으로 도심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박성효(사진) 시장은 무지개 프로젝트를 도심 재생 모델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이는 달동네를 싹 밀어버리고 고층아파트를 짓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는 원주민은 5명에 1명도 안되고 나머지는 나머지는 다 쫓겨나야 합니다. '용산 사태'를 비롯해서 도심 재개발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그 지역주민들이 그 자리에서 잘 살게 될 때 사회전체가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박 시장은 무지개란 이름에 대해 "실의에 찬 빈곤층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주거와 교육, 자활, 문화, 공동체의식 등을 삶의 전 분야에 걸쳐 다중 지원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이 프로젝트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 대해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대신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곳에서부터 범죄와 무질서가 확산된다는 이론입니다. 실제로 무지개 지역의 한 공터에 폐차 한 대가 버려지니까 그 주변이 온통 쓰레기장이 됐는데 이를 치우고 나무를 심었더니 예쁜 공원으로 탈바꿈하더군요."

그는 "환경의 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는 점"이라며 "주민들이 모여 '마을신문'을 만들며 공동체 발전을 논의하는 움직임도 큰 성과"라고 소개했다.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