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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알몸 연극 '논쟁' 국내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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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알몸 연극 '논쟁' 국내 초연

입력
2009.08.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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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장'이란 극단명은 '지식산업'이라는 출판사 이름이 선보였을 때처럼 낯설지 모른다. 체호프, 그리스 비극 등 2003년 창단 이후 고전작의 수용을 두고 벌인 일련의 진지한 무대들 덕에 그 기표의 생경함은 눅어졌다. 그들이 또 다른 경계에 서 있다.

"아녜요. 차이점을 인정해 주세요. 남자들은 배신을 끔찍하게 하지요. 남자들은 이유 없이 변해요. 그들이 한 행동을 변명조차 하려 하지 않아요."(여성) "여자들이 더 위선적이고 더 점잖은 척하지요. 여자들은 이런저런 변명을 하며 소란을 피우지요"(남성)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마리보의 텍스트는 요즘 눈으로 보자면 자의식과 성에 눈뜨기 시작한 10대들의 언어를 방불케 한다. 바로 그 간극 사이에 이 연극의 실존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남녀 각각 2명씩, 모두 4명이 각자 견해나 상상력을 펼치는 무대에는 성과 사회적 규율에 눈떠가는 양상이 표출된다. 여기에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 임형택씨는 또 하나의 장치를 밀어넣기로 했다. 벗은 몸.

공개 장소에서의 나신은 여전히 문화적 스캔들이며 사회적 사건이다. "이 작품 소개가 인터넷에 오른 8월 초 이후, 극단 사무실에 잇달아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노골적 표현이 어느 정도냐며 끈질기게 캐물을 때는 거의 스토커 수준이었다." 저를 두고 '즐거운 비명'이라 한다면 극단측을 폄훼하는 일이다. 두툼한 책자로 남은 2월 워크숍 현장이 그 증거다.

사랑이 화폐로 대체되는 현실에서 알몸은 마지막 순수라는 임씨의 열띤 설명 속으로 배우들은 빠져 들어갔다. 초입 20여분 동안의 나신 장면은 사랑이 화폐화, 인스턴트화한 세상에서 우리가 정말 알몸으로 만난 적이 있었나를 되묻는다.

압축하자면 아담과 이브가 옷 입고 만났겠느냐는 것이다. 요가 수련 동작은 물론, 선비들의 심신 수련법이던 정가(正歌) 발성법까지 탐구됐던 일련의 워크숍은 무대의 '진정성'을 방증한다.

29일부터 9월 1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국내 초연이라는 깃발 아래 오를 이 연극은 연출자의 경험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뉴욕대 대학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던 그는 배우로서 1995년 뉴욕 라마마 극장, 독일 보쿰 시립극장 등지의 공연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객석을 관찰했다. "2~3분만 지나면 그들은 극에 몰입했다. 옷을 입고 있는 관객들이 더 어색해 보일 정도였다"고 말한다. 이제 그는 기억의 확산을 꿈꾸고 있다.

무형문화재 이수자들로부터 전통 예술을 교육받은 극단 단원들의 코러스 연기나 각종 구음(口音)의 사용 등은 사이버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무대 전략이란 관점에서 또 다른 논쟁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불필요한 스캔들도 원치 않는다. 20세 이상으로 관람 자격을 제한해 입장 전 신분증 확인 절차를 둔 것이나, '카메라나 핸드폰 등으로 공연 장면을 촬영시 형사처벌을 감수한다'는 내용에 서명을 받는 조치 등은 극단이 택한 고육지책이다.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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