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린 19일과 2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제2체육관에는 800여명의 초중생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왕년의 여자농구 명센터 박찬숙(50)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야심 차게 시작한 대규모 유소년 클럽대항 농구대회였다.
고사리 손으로 큼지막한 농구공을 열심히 튕겨대는 어린이들에게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아 7위에 그쳤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코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몸을 비벼대며 농구를 즐기는 이들 800명이야말로 한국 농구의 청사진이요, 미래다.
농구인이라면 뿌듯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여자프로농구연맹(WKBL)의 수장인 김원길 총재가 행사장을 직접 찾아 아이들을 격려했고, 박한 전 대학농구연맹 회장 역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이 밖에도 많은 농구계 원로들과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찾아 한국 농구의 미래를 지켜봤다. 농구골대, 농구공, 스포츠음료 등 농구에 관계된 각종 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서 대회 진행을 도왔다.
그러나 한국 농구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한국농구연맹(KBL)만은 이 행사의 이방인이었다. 이인표 KBL 패밀리 회장과 모 구단 단장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 KBL 관계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준비한 한 실무자는 "KBL에 협찬을 부탁했으나 다른 현안이 많고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물론 KBL은 자체적으로 유소년 대회와 길거리농구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남의 행사'에 쌈짓돈을 보태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KBL은 총재 이하 각 구단 단장들이 선진 농구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가 억대의 예산을 쓰고 오는 이른바 '부자 집단'이다.
전육 총재가 우승 트로피를 수여하는 사진이 찍히지 않는 '남의 행사'라도, 농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미 KBL에는 'KBL'만 있을 뿐, '농구'는 없다"는 비아냥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톈진 참패' 이후 "이번 실패는 농구인 모두의 책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전육 총재 본인의 말부터 먼저 실천하는 KBL이 돼야 한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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