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2부 <6> 남녀의 차이는 타고나는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2부 <6> 남녀의 차이는 타고나는가

입력
2009.04.10 00:00
0 0

"저… 사실 그쪽을 종종 지나치며 봐왔거든요. 이런 말 하기 쑥스럽지만, 정말 멋있으세요." 캠퍼스를 거닐던 평범한 대학생에게 매력적인 낯선 이성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묻는다. "오늘 밤 저와 데이트해 주실래요?" "오늘 밤 저 혼자 사는 아파트에 놀러 오실래요?" "오늘 밤 저와 성관계 가질래요?"

1989년 미국의 심리학자 러셀 클락과 엘레인 하트필드는 이성의 여러 제안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데이트에 동의한 여학생은 절반 정도였고, 남학생도 절반쯤이었다. 아파트에 따라가겠다고 한 여학생은 겨우 6%였지만, 남학생은 무려 69%였다. 성관계에 동의한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던 반면에, 남학생은 75%나 되었다.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나머지 25%의 남학생들도 화를 내기는커녕 몹시 미안해하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나중에 꼭 연락하겠노라고 했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피임도 손쉬운 사회에 사는 남녀 젊은이들이 매력적인 이성의 성관계 제안에 대해 보인 반응이 왜 0%와 75%로 극단적으로 엇갈릴까? 남녀의 이러한 심리적 성차 가운데 상당수는 과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일까?

■ 남성과 여성은 정말로 다른가?

심장의 구조나 면역계의 반응처럼 남성과 여성의 몸은 많은 측면에서 같다. 하지만 외부 생식기 등에서 남녀의 몸이 다르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남녀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많은 면에서 같지만 몇 가지 면에서는 다르다. 기이하게도 신체적 성차는 논란거리가 거의 되지 않지만, 심리적 또는 행동적 성차는 과연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부터 열띤 논란을 낳는다.

성별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입증됐다. 남성은 되도록 많은 이성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으려는 욕망이 여성보다 훨씬 더 강하다.

여성의 언어 능력은 남성보다 더 뛰어나다(말할 때 "에, 음, 뭐지…" 등의 불필요한 잡소리가 들어가는 빈도를 되새겨 보라). 남성은 폭력에 의존하여 갈등을 해결하려는 성향이 더 높다.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끈끈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

남성은 지위나 돈, 사회적 인정을 얻으려고 경제적ㆍ신체적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로또를 잔뜩 사는 이들은 주로 남성이다). 여성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남성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남성은 수학적 추론 문제에 더 강하지만 여성은 복잡한 계산 문제에 더 강하다.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 텅 빈 백지상태이며, 그 사회의 독특한 문화나 사회화 과정이 마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써넣는다고 믿는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성차의 존재를 부인하려 애쓴다. 남성과 여성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똑같고, 성차가 조금이라도 관찰된다면 이는 전적으로 외부 환경에 의한 결과이지 결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을 한낱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가 소멸하면 위스키 광고에 늘씬한 여성의 다리 대신에 우락부락한 강호동의 알통이 등장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성차가 진화적 뿌리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조선시대의 학자나 관료 중에 여성이 극히 드물었던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이 여성의 사회진출이 부당하게 억압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어떠한 유전적 설명도 군더더기다. 그러나 성차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아프리카 초원의 수렵채집생활에서 겪는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선택에 의해 다듬어졌다. 문제가 다르면 정답도 다른 법,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적응적 문제를 풀어야 했던 영역에서는 당연히 그 해결책인 남녀의 심리적 적응도 서로 다르게 진화하였다.

■ 남녀는 번식성공도가 다르다

남성과 여성에서 왜 서로 다른 심리가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열쇠는 번식성공도(reproductive successㆍ한 개체가 평생 동안 낳는 자식 수)의 분포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아기는 한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어머니를 가진다. 따라서 한 사회 내의 남녀별 번식성공도의 평균값은 무조건 같다. 하지만 남성의 번식성공도는 편차가 여성보다 훨씬 심하다.

3,000 궁녀를 거느렸다는 백제 의자왕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은 여러 여성과 성관계할수록 번식성공도가 직접적으로 높아진다(물론 어떤 남성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평생 노총각으로 지내다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여성의 번식성공도는 얼마나 많은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확보해 낳은 자식들을 잘 길러내느냐에 달렸다.

요컨대 남성은 잘하면 대박이요 못하면 쪽박이다. 여성은 최소한 소박이요 운 좋으면 중박이다. 이제 번식성공도의 분포가 남녀에서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몇몇 진화된 성차들을 살펴보자.

첫째, 남성의 번식성공도는 성관계 상대의 수에 비례하므로 남성은 여성보다 하룻밤 섹스를 더 갈망한다. 클락과 하트필드의 연구는 이러한 욕망을 잘 보여준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와 데이비드 슈미트는 바람직한 이성을 처음 만난 이래 그 사람과의 성관계에 합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성차를 조사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이상형을 만난 지 5년이 흘렀다면 아마도 성관계까지 진도가 나갔으리라 답했다. 2년, 1년, 6개월 등 그보다 더 짧은 기간 내에 성관계에 합의할 가능성은 언제나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았다.

심지어 바람직한 이상형을 만난 지 단 한 시간만에도 남성은 성관계에 합의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 신화그룹의 후계자 F4 구준표라 할지라도 만난 지 한 시간밖에 안 됐다면 그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답했다.

■ 얼굴 좋아하는 여아, 모빌 좋아하는 남아

둘째, 잘하면 대박 못하면 쪽박이라는 남성의 처지는 여러 가지 위험한 일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심리를 진화시켰다. 가만 있으면 망하는 건 어차피 마찬가지다. 위험할지언정 엄청난 지위나 자원을 확보할 수도 있는 일이라면 일단 저질러 보자는 것이다.

남성들은 자동차 사고, 레저 활동 중의 안전사고, 살인 사건 등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여성보다 훨씬 더 높다. 직장을 구할 때 회사가 오염이 심한 도시에 있다는 사실은 남성의 직업 선택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도 여성은 안전한 저배당 상품을 선호하는 반면 남성은 위험부담이 큰 고배당 상품을 선호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건강 상의 위험에도 둔감해서 집안 아무 데서나 양말을 벗어 던지고 자기 칫솔이 안 보이면 남의 칫솔로 선뜻 양치질하곤 한다.

진화심리학자 보구슬라프 파블로프스키와 그 동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이러한 성차를 찾아냈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위험한 길을 그냥 건너면, 시간을 절약한다는 이득이 있지만 차에 치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조사 결과 예측대로 남성은 여성보다 무단횡단을 더 자주 감행했다. 보행자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무단횡단을 선도하는 이도 주로 남성이었다.

흥미롭게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여성이 끼어 있으면 남성이 무단횡단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여성의 경우는 옆에서 지켜보는 남성들이 있건 말건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는 남성들이 배우자를 유혹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험한 일을 추구하게끔 진화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셋째, 여성의 번식성공도는 자식을 얼마나 잘 키워내느냐에 많이 의존하므로 여성은 아이를 돌보거나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꾸려나가는 일에 남성보다 더 능하다.

실제로 여성들은 타인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부터 그 사람이 어떤 감정상태인지 더 잘 읽어낸다. 발달심리학자 사이먼 배런 코헨과 그 동료들은 태어난 지 단 하루 된 아기들에게 여자 얼굴 사진과 움직이는 모빌을 동시에 보여준 다음 어느 쪽을 더 오래 쳐다보는지 측정했다.

아니나다를까, 여자 아기들은 얼굴 사진을 더 오래 쳐다보았지만 남자 아기들은 모빌을 더 오래 쳐다보았다. 남자 아기들이 사람보다 사물에 관심을 쏟게끔 만드는 것이 가부장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생후 단 24시간 안에 남자 아기들을 세뇌시킨 가부장적 요인이 산부인과병원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 다르게 진화한 심리 기제

결론적으로 남녀의 차이는 적지않은 영역에서 발견되며 그 가운데 일부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심리 기제가 남성과 여성에서 각기 다르게 장착되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그렇다면 유전자와 환경 가운데 유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걸까?

그렇지 않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가 아니라 심리 기제를 연구한다. 이를테면 '얼굴 사진'이라는 외부 자극에 '오래 쳐다봄'이라는 특정한 반응을 짝지어준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그저 겉치레로 인정하지 말고 정말로 둘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진지하게 밝혀야 한다고 본다.

정신지체아는 대부분 사내아이라는 사실처럼, 어떤 성차는 남녀 모두를 난감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현상을 없애고자 한다면 먼저 그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암이나 에이즈를 없애고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금도 밤을 지새우듯이 말이다.

전중환ㆍ경희대 학부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