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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부부들 '여보 생큐' 소통의 다큐/ "남편을, 아내를 더 많이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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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부부들 '여보 생큐' 소통의 다큐/ "남편을, 아내를 더 많이 알게 됐죠"

입력
2009.02.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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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땐 10대라는 느낌이 없었어요. 일찍 돌아가신 아빠 대신 엄마를 도와야 했기 때문에 조숙했지요. 스무 살 땐 파나소닉사(社)에서 일했어요. 1년 계약이 끝났을 땐 너무 슬펐어요. 난 가족 생계를 책임진 사람이었거든요."

컴퓨터 스피커에선 필리핀 출신 결혼 이민자인 주비(32)씨의 목소리가 흘렀고, 모니터엔 그녀의 어릴 적 사진이 차례로 지나갔다. 주비씨가 골똘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쉴새없이 움직였다.

편집 프로그램으로 영상 위에 내레이션을 정확히 포개는 작업이었다. 지켜보던 남편 최재선(38)씨의 손이 어느새 아내 어깨에 얹혔다. 맞은편 컴퓨터엔 최씨가 아내를 인터뷰하는 동영상이 흘렀다.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땠느냐"는 최씨의 질문에 주비씨가 수줍게 웃고 있다.

14일 오후 인천 부평구의 다문화가정 지원단체 '아이다마을'에선 국제 결혼 부부들이 모여 두 달 간 직접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1월10일부터 6주 동안 주말마다 진행된 다큐멘터리 제작 교육 과정의 마지막 날이다. 가벼운 취미 교육이 아니라 4월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될 작품을 만드는 진지한 작업이다.

다큐 제작에 참여한 부부는 네 쌍. 인천에 사는 베트남, 필리핀 이주 여성 부부 2쌍씩으로, 모두 결혼 2, 3년차의 '신혼 부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07년부터 관련 단체의 도움을 받아 결혼 이주 여성들이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해왔는데, 남편까지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참가자들은 성장 과정과 지금의 결혼 생활을 6㎜ 디지털 캠코더에 질박하게 담은 10분 안팎의 다큐멘터리를 각자 완성했다. 촬영ㆍ편집 전문가 4명이 이들의 선생님이 돼줬다.

제작 책임자인 김진열 감독은 "이주 여성은 물론, 국제 결혼 부부 사이에도 언어로 인한 불편이 있는 만큼, 영상을 매개로 서로 소통해 보자는 목표로 교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를 담아 프로젝트 이름도 '부부 카메라 일기'로 붙였다.

베트남 출신 아내 팜 티 닙(21)씨와 참여한 장성주(36)씨는 "다큐를 만들면서 상대방의 옛 사진을 보며 성장 과정을 알게 되고 서로의 속 깊은 생각을 나누게 돼서 좋았다"고 말했다.

장씨는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아내가 나나 한국 생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염려도 많았는데, 많이 만족하는 것 같아 기쁘고 안심됐다"고 말했다.

닙씨도 "오빠(남편)를 더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특히 남들보다 팔이 짧은 선천적 장애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장씨의 고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호규(41)씨의 다큐를 보고 있는데 불쑥 서울 지하철 혜화역이 등장했다. 입덧 때문에 도통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필리핀 출신 0아내 마릴루(32)씨에게 고향 음식을 사다 주려고 설 연휴에 혜화동 '필리핀 장터'를 찾은 것이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10대 후반 때부터 네 동생의 뒷바라지 하느라 결혼이 늦었다는 강씨는 "우리 부부 사는 걸 보면서 다들 국제 결혼 하길 잘했다고 말한다"며 뿌듯해 했다. 개인 교습까지 받으면서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마릴루씨는 이달 초 한 달 일정으로 친정에 갔다. 아내의 작품까지 편집하느라 강씨는 분주했다.

보티 죽 마이(23ㆍ베트남)씨는 예정일보다 두 달 앞서 지난해 12월24일 아기를 낳는 바람에 이번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남편 김연국(40)씨의 다큐엔 '어린 신부'의 출산기가 애틋하게 담겨 있다.

함박눈 내리는 출산일의 병원 앞 풍경, 아기를 낳은 직후 지친 표정의 아내, 인큐베이터에서 우유를 받아먹는 아기, 며느리와 손주를 보살피러 서둘러 상경한 노모…. 김씨는 "아내가 갑자기 양수가 터져 경황이 없었지만, 아들에게 엄마의 수고를 알려주려 카메라를 들었다"며 "어릴 적 사진이 별로 없다 보니 아이에게만큼은 잊지 못할 기록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7편의 다큐는 옴니버스 영화로 재편집 돼 영화제에 출품된다. 앞서 28일엔 아이다마을에서 시사회가 열린다. 아이다마을 김성미경 회장은 "영상에는 언어를 뛰어넘는 소통 능력이 있다.

3월부터 아시아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 여성들이 제작하는 인터넷 방송을 개국하는 것이 장기 목표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이날 편집 작업은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임신 5개월의 부푼 배를 만지며 '10시간 산통' 끝에 내놓은 완성본을 감상하는 닙씨의 피곤한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배어나왔다.

현관문을 열어준 자신을 끌어안는 화면 속 남편을 보며 닙씨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 아내가 사랑스러운지, 남편 장씨의 눈도 웃고 있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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