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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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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입력
2009.02.1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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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한쪽이 급격히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과 함께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가득 채우는 사랑의 포만감이 느껴진다. 가장 화려한 생의 정점에 이른 순간 최후를 맞는 벚꽃의 비장한 운명을 목도하는 듯한 느낌, 그래서 슬프도록 아름답다. 독일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삶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덩어리들을 가슴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게 만드는 수작이다.

가정을 위해 부토('살아있는 시체의 춤'으로 불리는 일본 현대무용) 무용가의 꿈을 접었던 나이든 아내 투루디(한넬로어 엘스너)는 늙은 남편 루디(엘마 베퍼)의 치명적인 병을 알아챈다. 아내는 남편이 눈을 감기 전 여행을 통해 마지막 행복을 만끽하길 원하지만, 이 남편 참 눈치 없다.

"후지산을 함께 보러 가자"는 아내의 권유에 "산은 다 똑 같고 독일에도 산은 많다"며 면박을 주고, "막내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도쿄에 가보고 싶다"는 아내의 소원은 "아들이 오는 게 더 싸게 먹힌다"며 깔아 뭉갠다. '행복이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평소 소신이 만들어낸 타박 아닌 타박이다.

결국 노부부는 베를린에 사는 아들과 딸의 집을 찾는 선에서 타협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고 싶은 자식들의 눈치밥뿐. 두 사람은 예정에 없던 발트해로 여행 길을 틀고, 그곳에서 아내는 급작스레 사신(死神)을 맞는다.

이야기의 출발은 한없이 신파에 가깝다. 한글 제목마저도 노부부의 서글픈 사랑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그러나 억지 눈물이나 짜낼 요량으로 만들어진 중ㆍ장년층용 멜로로 이 영화를 허투루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사랑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이끌어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아내의 부재는 루디에게 감당할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루디는 아내가 떠난 뒤에야 아내의 바람을 깨닫고, 전재산을 털어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도쿄로 향한다.

그리고 "왜 이제야 찾아왔냐"는 막내아들에게 고통스럽게 회한을 털어놓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은 줄만 알았다." "내게 남은 그녀의 기억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아내의 옷을 입고 절규하는 루디의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감독은 삶과 사랑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서도 굳이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부토 춤을 추며 후지산에서 아내와의 진정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루디를 통해 죽음이 때론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뒤늦은 후회만 거듭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적 아둔함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원제는 '벚꽃:하나미'(Cherry Blossoms:Hanami). 하나미(花見)는 꽃구경을 의미하는 일본 말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삶에 대한 감독의 의문을 벚꽃놀이에 비유한 제목이다.

'파니 핑크'(1994)로 국내 영화팬에 이름을 알린 도리스 되리 감독의 최신작이다. 지난해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2007년 독일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1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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