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막내 동생이 전화를 해서는 대뜸 "동양화와 서양화는 어떻게 달라?"라고 묻는다.
전화상인 만큼 전문인이 아닌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말을 하다 보니 쉽게 풀어 준다는 것이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가 필요했다. 동양화와 서양화는 어떻게 다르며 우리 그림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물론 현대에 들어 다양한 혼합기법과 매체들과의 실험적 작품들이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동·서양화의 구분이 굳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분리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느끼자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그림에는 고유한 정신세계와 생활의 미적 체험들이 녹아 있지 않은가. 이것이 전통이라는 것이며 현재의 우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점은 재료의 차이였다. 그러나 동일한 원재료는 접착, 보존, 효과로 사용되는 미디엄(midium)에 따라 성질이 달라질 뿐이다. 즉 원재료에 미디엄으로 아교를 쓰면 동양채색물감, 아라비안 검(arabic gum)을 쓰면 수채화, 기름을 쓰면 유화, 아크릴 수지를 쓰면 아크릴 컬러가 되는 것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원재료의 차이가 아니라 미디엄의 차이로 인한 스타일 즉 일종의 회화양식의 차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로 동양화는 주관을 서양화는 객관을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동양화는 누가 뭐라 한들 내가 보고 느끼는 주관이 중요하다면, 서양화는 내가 보는 것이 네가 보기에도 그러한지 객관화가 중요하였다. 또한 동양화는 평면성을 중시하였다면 서양화는 입체를 중시한다. 이를 위해 재료 또한 여기에 적합한 형태로 개발되어졌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객관과 주관, 입체와 평면, 재료에 따른 양식의 차이들이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동양 그림, 우리 그림에 엄밀한 의미에서 재료적인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컬러 TV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컬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재료는 파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재료라는 것은 시대의 반영일 뿐이다. 재료가 달라졌다고 전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선(鄭歚)이 금강전도(金剛全圖)에서 보여준 힘 있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 긋는 수직준법(垂直皴法)은 당시 도침(搗砧)이 발달하여 질기고 튼튼한 종이가 개발되었기에 가능하였다. 초서(草書)는 서체(書體)가운데 가장 나중에 나오게 되는데 이는 부드럽게 흘려 쓰는 초서가 가능하게끔 잘 스미는 고운 종이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료와 형식은 시대 안에서 서로 만난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때 우리 고유의 전통 음료인 식혜를 캔 음료로 만들고, 햇반을 만들고, 김치냉장고가 와인쿨러(Wine cooler)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이 모든 일은 재료와 형식이 시대 안에서 만나는 전통의 유쾌한 현대적 계승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그림도 이렇게 시대를 담아내 가야 할 것이다.
전국의 미술대학에 순수미술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고개를 밖으로 돌리면 미국의 유수한 미술대학에서는 동양화 과목이 신설되고, 장학금을 받고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동양화 요소들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본다는 상황을 전해 듣는다. 그렇다면 더욱 동·서양화에 대한 이해는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그림 특유의 본질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나래를 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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