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는 예산 작업. 정부ㆍ여당은 이념과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반대로 야당은 집권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때문에 예산은 본질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일 수 밖에 없다.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고 통과시키는 일은 회계작업이 아니라, 정치과정 그 자체다.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싸울게 없어서 나라 살림까지 놓고 싸우냐'고 하는 것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아주 공정하지 못한 비난이다. 미국 역시 행정부와 의회, 다수당과 소수당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치는 경우는 바로 예산안을 다룰 때다.
금주 화요일(12월2일)은 헌법이 정한 국회 예산안처리 시한이다. 그러나 국회가 이 법정시한을 지킨 예는 거의 없고, 올해도 입법부가 헌법을 어기는 이 관행은 어김없이 이어지게 됐다. 이 모든 책임은 일차적 국회에 있지만, 한편으론 정치현실을 감안할 때 12월2일이란 법정시한 자체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든다(물론 헌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고, 늦춘다고 국회 의원들이 준수한다는 보장도 없긴 하지만).
어차피 '늑장처리'가 불가피해진 이상, 국회는 심의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행정부로선 하루하루가 다급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도장을 찍어줄 수는 없는 일. 며칠 더 늦어지더라도 낭비되는 혈세는 없는지, 경제회생과 서민지원을 위해 좀더 강조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다.
정치의 하이라이트가 '타협'이라면, 최고의 정치 행위인 예산안 처리도 어차피 여야간 '타협'의 결과일 것이다. 의원 지역구 사업을 끼워넣는 그런 타협이 아니라, 좀 더 큰 틀의 여야간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 협상이 경제난 회복과 민생안정의 시대적 화두를 벗어나선 안되고 졸속 심의로 이어져서도 안되겠지만, 여야가 타협조차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늑장처리'와는 별도로 국회는 또 한번 무책임과 무능을 입증하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마지막 달의 첫 주. 이래저래 심란한 때다. 하지만 국민들도 이번 주부터는 주식 시세판을 들여다보는 사이사이,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성철 경제부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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