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최근 신문을 읽다보면 경제위기를 뜻하는 각종 영어 이니셜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올 초만 해도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뜻하는 'I의 공포'가 자주 거론되더니, 요즘은 리세션(recession)의 'R', 디프레션(depression)과 디플레이션(deflation)의 'D'가 번갈아 오르내리는데요. 요즘 얘기되는 갖가지 표현의 불황이 무슨 뜻이고 또 얼마나 무섭길래 연일 세계 경제가 요동치는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A.
'경기(景氣)'란 흔히 전반적인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개인이나 가계는 월급이 오르거나 갖고 있는 주식, 부동산 가격이 올라 소득이 늘고 생활형편이 나아지면 경기가 좋다고 느끼겠죠.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 늘고 수익이 많아지면 호경기라고 여길겁니다. 반대로 임금이 줄거나 자산가격이 떨어지는 경우, 매출 또는 이익이 줄어드는 경우는 경기가 나쁜, '불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세션, 디프레션, 디플레이션은 어떻게 다른가요?
요즘은 불경기를 놓고도 정도나 형태에 따라 여러가지 표현이 쓰이고 있습니다. 먼저 리세션과 디프레션의 차이를 알아볼까요?
리세션은 보통 '경기침체'라고 번역되는데요. 생산, 소비, 투자 등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평상시 수준보다 크게 부진한 경우를 말합니다. 국민경제에서는 경제활동의 확장과 수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 즉 경기순환이 나타나는데 경제활동이 수축되는 기간 중에서도 수축 정도가 심한 경우를 가리켜 리세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경제학자들 또는 정책당국에서는 대개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이상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보이면 경기침체라고 판단합니다.
디프레션 역시 우리말로 하자면 경기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리세션에 비해 침체 정도가 더 심한 경우를 주로 뜻하는데요. 일부 학자들은 GDP가 10% 이상 크게 감소하는 경우를 가리켜 디프레션이라고 정의하기도 하고요, 또 일부에서는 같은 경기침체라도 경기가 정상 수준에서 하강하는 과정은 리세션, 뚝 떨어져 지속되는 상태는 디프레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1929~33년중 세계경제의 대공황은 그래서 영어로 'Great Depression'이라고 표현합니다. 대공황 시기에는 미국의 GDP가 31%나 감소했습니다.
다음으로 디플레이션이란 수요 부족으로 대다수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에 개인은 소비를 미루고 기업도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또 실질임금이 상승하게 됨으로써 실업률이 상승하고 실업자의 소득이 감소하여 경기가 더욱 위축됩니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물가하락과 수요감소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빚어져 경기부진이 심해지고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기가 침체되는 원인은 뭔가요
경기침체는 일반적으로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등에 과도하게 쌓인 거품이 터지면서 발생합니다. 또 오일쇼크, 정정불안, 갑작스러운 긴축정책 등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죠.
몇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1929~33년 사이 발생한 미국 대공황은 자동차, 라디오 같은 당시 신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이 지속되자 경제 주체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 및 부동산에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거품이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말 실물경제 활동이 둔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주식시장 과열을 경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등 거품이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보유자산이 부실화된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파산하고 전체 근로자의 25%가 실업자가 되는 등 미국 역사상 유례없이 긴 기간의 경기침체를 낳고 말았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발 경기침체는 잘 아시다시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시작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 장기간 저금리로 집값이 크게 뛰면서 거품이 커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자 결국 집값은 더욱 급락하고 그 여파로 소비도 부진해지면서 경기침체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2000년 미국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에 따른 경기침체는 '윈도우'라는 새로운 PC 운영체제 출시에 대비한 IT기업들의 과다한 설비투자 때문이었습니다. 또 1970년대 발생했던 제 1, 2차 석유위기는 석유 등 주요 원자재의 가격이 급등하여 경기침체가 유발된 사례입니다. 그 당시에는 중동 산유국들이 담합하여 원유가격을 크게 인상함에 따라 세계 각국의 물가가 급등하고 그 여파로 소비 및 투자도 감소하여 경기침체가 초래되었습니다. 석유위기는 공급, 즉 산업생산 측면에서 충격이 발생하여 경기침체?초래된 점에서 독특합니다.
주가나 집값이 떨어지면 경기침체가 오는 건가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은 경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보통 주가는 경기가 침체되기 전부터 먼저 떨어졌다 먼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은 경기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우선 소비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 주인의 재산이 줄고 이에 따라 소비여력도 줄게 되겠죠? 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은 담보가치가 떨어지니 은행들이 대출상환을 요구함에 따라 이전에는 소비에 쓰던 소득을 대출 상환에 써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소비가 줄어들게 되지요.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에도 주식을 가진 사람의 재산이 줄어드니 소비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산가격의 하락은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진 자산의 가격이 떨어지면 새로 투자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비싸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신규투자가 위축되는 것입니다. 또 자산가격 하락은 기업자산의 담보가치를 낮추므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게 되고 따라서 투자가 위축되게 됩니다.
결국 자산가격 하락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며, 이로 인해 경기침체를 유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침체가 오면 취업난도 심해지나요
경기침체가 오면 당연히 고용사정도 나빠지게 됩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일거리도 줄어들게 되며 따라서 기업들은 종업원을 새로 채용하지 않거나 심한 경우 기존 직원을 해고하기 때문이지요.
올 상반기까지 5% 내외에 머물던 미국의 실업률은 10월 들어 6.5%까지 상승했고 우리나라의 신규 일자리 증가도 연초의 20만명 수준에서 10월에는 10만명 아래로 떨어지는 등 경기침체의 영향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고용사정의 악화가 가계의 소득 감소와 이에 따른 소비감소로 이어져 경기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3일에는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통해 성장률 제고, 투자확대, 건설경기 활성화 등을 통해 7만~8만개의 일자리를 추가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행 조사국 임시영 조사역
■ 경기침체에 빠진 세계경제
지금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에 빠진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이 있을까요. 앞서 말한 '리세션' 기준으로, 그러니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나라들이 벌써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보통 미국 유럽 일본 등 대체로 성장률이 낮은 선진국에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같이 두자릿수 성장을 하던 신흥 국가들은 성장률이 크게 떨어져 한자릿수가 돼도 경기침체라고는 잘 부르지 않죠.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래서 세계경제가 평균 3%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하면 세계 경기가 사실상 침체에 빠졌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선진국을 먼저 볼까요. 세계 제 2의 경제대국 일본은 올해 3분기 GDP가 전분기 대비 0.1% 감소해 2분기(-0.9%)에 이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기침체(리세션)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지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15개국)도 평균적으로 이미 경기침체에 돌입했습니다. 올해 2, 3분기 모두 성장률이 -0.2%였습니다. 특히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인 독일은 GDP가 2분기 0.4% 감소에 이어 3분기에도 전분기 대비 0.5% 감소를 기록, 12년 만에 경기침체에 진입해 충격을 줬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어떨까요. 연초 대규모 감세 정책 덕에 2분기에 3.3%의 깜짝 성장률을 기록했던 미국도 3분기에는 -0.3%으로 돌아섰고, 4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 됩니다. 내년 초 최종 집계가 나오면 경기침체에 들어섰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이머징 마켓이라 불리는 신흥 국가들도 수치상으로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지만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안심할 처지는 아닙니다. 지난해 11.9%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올해 2분기까지 두자릿수 성장을 한 중국은 3분기에는 성장률이 9%까지 떨어지자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문제는 내년입니다. 이미 IMF는 지난달 초 미국의 내년 성장률을 마이너스 0.7%, 유로존은 마이너스 0.5%, 일본은 마이너스 0.2%로 각각 예측한 바 있습니다. 내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마저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보고서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요. 그래서 국가마다 대규모 부양책을 통해 경기를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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