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남북관계 경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만나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고 자원, 에너지 및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경제분야를 비롯해 정치, 외교, 안보, 국방을 포함한 협력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양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즈프롬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점이다. 이 각서에 따르면 한국은 러시아에서 연간 최소 750만톤의 천연가스를 30년간 도입하게 된다. 그에 앞서 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은 러시아 국경에서 북한을 통과해 우리나라와 연결되는 가스배관 건설에 대한 공동연구에 나선다.
남ㆍ북한-러시아 삼각 협력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추진되면 북한이 단순히 통과료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숙원사업인 전력과 난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북한경제 재건을 앞당기고, 남북의 상생과 공영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핵 문제가 북한의 에너지난 해결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핵화의 진전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은 에너지 제공 없이 단순히 통과만 하는 가스배관 건설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도 비슷한 맥락에서 러시아는 물론 남ㆍ북한에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것이고, 남북관계나 동북아 평화와 경제질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막대할 것이다. 핵심 관건은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대규모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이 자신을 배제한 남ㆍ북한-러시아 3국 간 협력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도 주목할 대목이다. 우선적으로 남북관계가 시급히 복원되지 않는 한 이 프로젝트들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이 대통령이 지금까지 밝힌 다양한 남북경협 구상의 특징은 당장의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먼 미래를 겨냥한 비전적 사업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을 지원하겠다는 '비핵ㆍ개방ㆍ3000'구상도 그렇다.
상대방인 북한과 사전 협의나 공감대 형성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표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북한의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한 사업이라면 북한의 입장도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어법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이 핵 보유야망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완전한 일원으로 복귀한다면 무엇을 지원해주겠다는 식의 전제가 늘 붙는 어법도 실용적이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이번 방문으로 2월 말 취임 이후 7개월여 만에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 정상외교를 마무리지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목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삼아야 한다. 마침 이 대통령도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4강 외교의 완성과 성과도 결국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빚을 볼 수가 없다. 러시아와의 합의사항 이행을 명분으로 남북관계의 대반전을 모색한다면 국제 금융위기와 국내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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