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라는 말이 어떤 국어사전들엔 표제어로 올라있고, 어떤 국어사전들엔 올라있지 않다. 사전편찬자들이 죄다 이 말을 표준어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딸내미'는, '아들내미'처럼, 그리고 '아들내미'보다 훨씬 더 흔히, 나날의 대화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을 표제어로 올린 사전들에 따르면, '딸내미'는 "'딸'을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딸내미'를 과연 '사랑의 말'로 꼽을 수 있는지에 대해 나와 생각이 다른 독자들이 계실 수 있겠다. 딸내미를 키울 욕심이 간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나에겐, 이 말이 넉넉히 사랑의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사랑의 말들' 거의 모두와 달리, '딸내미'는 연애의 말이 아니라 육친애의 말, 혈육애의 말, 가족애의 말이다. 이 글을, 딸자식을 두지 못한 사내의 '딸내미 판타지'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둘째까지 아들… 셋째도 생각했지만
둘째아이마저 아들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크게 실망했다. (미안하다, 둘째야!) 첫아이 때도 딸이었으면 했지만, 손자 보신 걸 부모님이 하도 기뻐하셔서, 아쉬움을 억지로 눅였다. 그런데 둘째까지 사내아이이고 보니, 이제 '가족로맨스'는 끝났구나 싶었다. 산고(産苦)를 내가 겪을 것도 아닌데, 아내에게 아이 하나 더 보자고 말하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오토 랑크는 어떤 개인이 제 실제 가족관계를 부인하고 환상이나 공상에 기대어 어딘가에 있을 제 '진짜 가족'을 지어내는 방식을 '가족로맨스'[Familienroman]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엄마에게 불만이 쌓인 아이가 "내 '진짜 엄마'는 이런 사람일 리가 없어. 그 분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나를 이 한심한 집에 맡긴 게 분명해" 하는 식으로 상상하는 것이 가족로맨스다.
그러나 나는 지금 '가족로맨스'를 그런 전문적 뜻으로 쓰고 있지 않다. 여기서 가족로맨스는, 그저 말 그대로, 특히 '부녀 사이의' 잔정이 넘치는, 로맨틱한 가족관계를 뜻한다.)
사실 그 염치없는 꿈을 내가 슬그머니 드러내지 않은 건 아니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단호히 거부했다. 따지고 보면, 셋째아이가 딸이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무모한 짓이기도 했다. 이제 와서야, 나는 아내가 슬기로웠음을 깨닫는다. 아들자식 둘도 이리 버거운데, 아들 셋은 지옥이리라.
주로 내 잘못으로, 나는 두 사내자식들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면 셋째'아들'과도 마찬가지이기 십상이었으리라. 아내가 그 때 '위험회피자'(risk averter)로 처신한 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딸내미가 없는 게 서운한 건 지금도 여전하다. 딸자식(들)을 가진 친구들을 볼 때면 늘 부러움이 질투심과 범벅된다. 누이 셋과 어울리며 자란 나는, 여자라곤 오직 아내뿐인 내 '살벌한' 집이 몸에 잘 안 맞는 옷 같다.
딸내미를 둔 친구들 앞에서 부러움을 털어놓으면, 그들은 대개 엄살떨지 말라고, 행복한 줄 알라고 나를 핀잔한다. 사내아이 키우기보다 계집아이 키우기가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현상이 이젠 남학생들 이상으로 여학생들에게도 번져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딸내미를 둔 친구 하나는 또, 계집아이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하면 사내아이 엇나가는 건 댈 것도 아니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사실, 나를 닮은 딸이라면 나 역시 사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제 아비처럼 퇴학 맞고 가출하기를 밥 먹듯 한다면, 나이 스물 한참 전에 술 담배 배우고 밤거리를 배회한다면, 나와 아내의 끌탕이 얼마나 심하랴.
하지만 그 점에 관해서, 사실 나는 '위험감수자'(risk taker)가 될 의향이 있었다. 그 위험이 크지 않았으니까. 제 집안 여자 자랑하는 푼수 짓을 잠깐 하자면, 아내와 처형과 처제들도, 내 누이 셋도, 내가 그리는 딸의 모습에 가깝다. 유전이라는 주사위놀이에서 나는 꽤 유리한 처지였던 것이다.
나보다 열여섯 살 위인 사촌형님 한 분은 오매불망 아들 보기만 기다리다가 딸만 넷 두셨다. 그 딸내미들은 다 잘 자랐다. 좋은 바탕을 타고나서이기도 했겠지만,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이기도 했을 테다. 그 사촌형님이 나는 한없이 부럽다. 그 사랑스런 종질녀들 가운데 내게 한 녀석만 양녀로 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한 적 있다.
딸만 넷, 부럽고 또 부러운 형님
사촌형님이 아들에 그리 집착한 것은 그가 장손이기 때문이다. 승중(承重), 곧 제사상속을 할 아들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 형님에게 아들이 없으니, 필시 그 분 조카들 가운데 하나가 그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제사를 떠맡게 될 게다.
우리 집은 아직까지도 5대 봉사를 하는 구닥다리 집안이다. 내 어린 시절엔, 한 해 제사 횟수가 달 수를 훨씬 넘겼다. '정부 시책'에 따라 그 많던 제사들을 '통폐합'한 뒤에도, 한 해에 대여섯 번은 제사를 지낸다.
설과 추석 때의 차례는 빼고 하는 말이다. 대여섯 번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한 것은, 내가 몇 년 전부터 일체 제사 참례를 하지 않아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 이전에도 제사 참례를 하지 않은 일가친척들이 있긴 했다. 그들은 지나치게 '독실한' 개신교도들이었다. 나는 종교적 이유로 제사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귀찮아서다. 그러나 그걸 핑계로 삼을 수는 없으니, 내 유물론을, 무신론을 갖다 들이댄다. 비록 구차한 핑계이긴 하지만, 내가 견결한 유물론자고 무신론자인 건 사실이다.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가 귀신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내가 죽은 뒤 제사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당부해 놓았다. 부자 사이의 육친애가 도탑지도 않으니, 그 아이들도 속 편하게 내 말을 따를 것이다.
구존해 계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거리다. 나 역시 내 자식놈들처럼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성장기와 청장년기를 엄격한 제사문화 속에서 자란 내가 '선고(先考)' '선자(先慈)'의 기일을 잊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 두 아이가 다 딸내미였다면, 지금 스물일곱 살, 스물세 살 처자가 됐을 게다. 그 아이들과 함께 술 마시고, 산책하고, 영화 보고, 수다스럽게 논쟁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당치않은) 상실감이 불현듯 부풀어 오른다. 나는 그 상실감을, '그 애들도 분명히 날 닮아서 제 부모에게 형편없이 까칠까칠, 데면데면했을 거야'라는 되뇜으로 치유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나처럼 아들만 둘인 선배 하나가, 지난겨울 자기 집에 나를 포함한 후배 몇을 불러 술과 밥을 먹이다가, 난데없이 자기 '수양딸'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맏이의 친구인데(그러니까 요즘 젊은이들 용법으로 '여자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하는 짓이 하도 예뻐 "너 내 수양딸 해라" 했더니 그 친구가 대뜸 받아들이더라는 것이다.
"걔가 정말 날 아빠라고 불러. 물론 진짜 아빠는 따로 있지만. 내 처한텐 엄마라고 부르고. 나한테 술도 사달라고 조르고, 외국 나갔다 올 땐 선물도 사오고."
취기에 돌린 메일 "딸이 생겼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이건 또 웬 이토 히로부미와 배정자란 말이냐? 자기가 키우지도 않았으면서 수양딸은 무슨 수양딸? 원조교제의 최신 형탠가?' 하는 심드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선배는 진지했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딸내미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소원 성취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땐 무심코 넘겼다.
한 달쯤 전, 술에 진탕 취해 들어온 날, 이른 새벽에, 나는 어떤 처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내 수양딸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고, 술이 깬 뒤 메일함을 열어보기 전까진 내가 명정 상태에서 여기저기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확인해보니 그 새벽에 '보낸 메일'이 무려 여섯 통이었다.
수신자는 다 달랐지만, 내용은 엇비슷했다. '너 내 수양딸 해라' '너 내 수양아들 해라' '너 내 수양조카 해라' '너 내 수양누이 해라' 따위. '수양조카'나 '수양누이'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그렇게 썼다.
수신자들은 나이가 제가끔 달랐고, 나와 친분이 깊은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스물아홉 먹은 처자 하나가 선뜻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나이 쉰에, 드디어 딸을 얻었다. 그 딸내미가 전자우편에서 처음 나를 '아빠!'라고 불렀을 때,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가슴이 유쾌하게 팔딱거렸다. 세상이 문득 아름다웠다. 마침내, 내 '가족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두 아들놈에게 거들먹거렸다. "늬들 하나도 안 아쉬워. 나, 딸내미 있어!"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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