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결혼이나 혈연의 대물림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따라 구성된 다양한 가족 결합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남편 없이 ‘생물학적 아버지’만 원하는 ‘미스맘(Miss Momㆍ정자은행의 정자로 임신한 배우자 없는 여성)’, 배우자가 없어도 아이를 입양해 키우겠다는 미혼 남녀 등. 혈연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가족 구성원을 선택해 사랑을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지난달 31일 건강한 딸을 순산한 방송인 허수경(40)씨는 대표적인 ‘미스맘’이다. 허씨는 지난해 3월 시험관 수술로 임신에 성공하자 당당히 ‘결혼을 하지 않은 2인 가구’를 선언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등 전문가들은 정자은행을 통한 임신 중 배우자가 아닌 다른 남성의 정자를 이용해 임신한 경우는 1.5%로, 이중에는 ‘미스맘’들도 상당수일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 결합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1월 국내 입양문화 활성화를 위해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입양특례법)’시행규칙 중 ‘혼인한 사람만 입양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면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내 대표적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30대 후반~40대 여성 5명이 바뀐 법에 따라 입양을 신청, 2명에 대해선 면담 절차까지 진행된 상태다. 이들 여성들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는 고소득 전문직이거나 자영업자들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혜영 가족연구실장은 미혼 남녀의 이 같은 선택에 대해 “특히 여성의 경우 생산성 중심의 경쟁 사회에서 일하다 보면 가정과 일을 병행하지 못하고 결혼을 미루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일부 독신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인 결혼 문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혈연, 준혈연 관계를 맺는 가족 구성을 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그러나 “‘한 부모’는 양육 스트레스를 풀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배우자가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은 혈연 중심의 가족 결합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딩크(DINKㆍ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족’은 일반화했고, 심지어 스페인 등은 법적으로 ‘동성 커플 가정’까지 인정하고 자녀 입양도 허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족 결합 형태가 21세기의 새로운 가족 제도로 정착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혈연을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결합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이화여대 함인희(사회학) 교수는 “개인의 행복이 중요시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허수경씨 등의 사례는 이례적인 일일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rkr
■ 입양 신청한 40대 미혼여성 정재원씨
“꼭 남편이 있어야 하나요? 내 성(姓)을 물려준 아이와 행복하게 살면 그만 아닌가요. 전 자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만난 미혼 여성 정재원(46ㆍ사진ㆍ의류자영업)씨는 사업가 특유의 당당한 목소리로 “가족의 인연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3개월 전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양신청서를 냈다. 정씨의 입양 신청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해 1월 입양특례법 시행규칙이 바뀌어 미혼인 사람도 입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한차례 부모 교육까지 받은 정씨는 현재 까다로운 방문 및 면담 조사 절차를 밟고 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원하는 정씨가 작은 소망을 이루기까지는 앞으로 1년 정도 걸리지만 그에겐 이마저도 ‘행복한 산고(産苦)의 시간’이다.
정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내가 주도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마흔을 넘어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 되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나름대로 확고한 인생관도 생겼다”며 “결혼을 하면 서로 가치관이 충돌하거나 여자가 남자에게 맞춰져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라고 털어놓았다.
호주제 폐지, 독신 입양 허용 등 ‘여성 한 부모’에 대한 사회적 환경이나 인식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은 그에겐 기회이자 다행한 일이다. 정씨는 “호주제 폐지로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고, 입양법 개정으로 독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평등항 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여성 한 부모’에 대한 사회의 여전한 편견,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소외감 등에 대한 우려에 대해 그는 “부모가 모두 있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정씨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왜 아빠가 없냐고 묻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행복이고, 너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아이가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 육아와 교육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독신 입양’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독신도 아무나 못한다”며 “홀로 생계를 유지하고 인생을 개척해 나갈 판단력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검증된 독신이라면 충분히 육아가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정씨는 “무책임한 부모들이 늘고 있는 요즘 같은 때, 아이를 올바로 키울 수 있는 엄격한 마음의 준비야말로 제대로 된 부모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 유럽·일본은 '다세대 공생형 주택' 각광
가족의 분화와 다양화가 일찍 시작한 유럽과 일본에서는 최근 ‘다세대 공생형 주택(Collective House)’이 각광 받고 있다.
‘융 운트 알트’(독일), ‘칸칸모리’(일본) 등으로 불리는 이 곳은 한 지붕 아래 노인 부부, 젊은 부부, 모자(母子)가구 등 여러 연령층이 독립된 공간에 살면서 식당, 현관, 거실 등은 함께 사용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역할 바꾸기’. 노인들이 직장인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주고, 젊은 부부들은 노인 대신 장을 봐주고 가사를 돕는다. 이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한 정(情) 쌓기에도 열심이다. 함께 차를 마시거나 저녁식사를 하고, 영어회화 강좌, 요리 교실을 열거나 하이킹 등 취미 생활도 함께 한다.
노인들은 자식, 손자 같은 이웃을 만들어 외로움을 해결하고, 맞벌이 부부는 육아 걱정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공생형 주택은 태어나는 아이는 적고 노인은 늘어나는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전국에서 200곳이 운영 중인데, 입주 희망자가 늘면서 1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일본도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피해자용 공동주택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 지원도 늘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공생형 주택 1곳당 연간 최고 4만 유로(약 5,500만원)를 보조하고 공용 거실의 신축 증설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 공생형 주택이 설립돼 운영 중이나 걸음마 단계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