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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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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산하

입력
2008.01.0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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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 한길사건국 60년, 해방공간 이병주 문장의 추억

1946년 1월 2일 해방된 한반도에서 공산주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 찬탁으로 돌아섰다. 해방정국은 이때부터 반탁운동의 거센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

해방공간을 생각하면 늘 이병주(1921~1992)의 소설 <산하> (전7권)가 떠오른다. <산하> 는 이종문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방부터 자유당 정권을 거쳐 4.19혁명에 이르기까지의 15년간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해방 되던 날도 노름판에서 그 소식을 들은 노름꾼 이종문은 무작정 상경, 정치지망생 테러리스트 등과 친분을 쌓으며 정세를 얻어듣고 노름판돈을 종잣돈으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만들어 이승만에게 제공, 막강한 권세를 누리며 국회에까지 진출한다. 이종문은 실재했던 인물이 모델이다.

일자무식인 그가 투표용지의 입 구(口) 자가 있는 쪽에 찍으라는 말을 들었는데, 가(可) 자에도 부(否) 자에도 모두 입 구 자가 보이자 아무데나 찍는다는 게 부 자에 찍어, 사사오입 개헌의 빌미를 만들었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무튼 <산하> 는 이종문을 비롯한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해방공간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이병주는 소설로 한국 현대사를 쓰려 했던 작가였다. '기록으로서의 문학, 사관으로서의 작가'가 그의 모토였다. 그의 문장은 호방했다. <지리산> 을 시작하며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지리산> 을 실패할 작정을 전제로 쓴다. 민족의 거창한 좌절을 실패 없이 묘사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이 내게는 없다. 좌절의 기록이 좌절할 수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최선을 다해 나의 문학적 신념을 <지리산> 에 순교할 각오다.” 놀라운 박람강기, 종장에는 허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사에 대한 속깊은 시선, 그 곡절을 여유 넘치는 문장으로 풀어낸 솜씨는 이병주만의 것이다. 지금도 고만고만한 읽을거리에 지칠 때면 그의 책을 들춰보며 기운을 되찾곤 한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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