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해다. 5년 만의 정권교체(어떤 사람들에게는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담긴 의미는 각별하다. 이번 정권교체의 의미는 단순히 5년 단임의 임기에 맞춰 대통령이 바뀌고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는 것만이 아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의미 있는 원단(元旦)이다. 지나보낸 2007년은 외환위기로부터 10년, 이른바 '87년 체제'라는 민주화 원년으로부터 20년을 맞은, 정치ㆍ경제적으로 중요한 해였다.
자연히 경제회생과 민주화의 성숙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고, 연말의 제 17대 대선은 그 모든 요구와 바람이 농축ㆍ집결되어 나타난 의사표현의 마당이었다. 이 대선을 통해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주변인사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아니 응징이라고 하는 게 마땅할 정도의 표심이었다.
그러니까 거칠게 말해, 새 정부와 국민은 우선 많은 부문에서 노무현 정부처럼 하지 않으면 되며 노무현 정부의 나쁜 것들을 솎아내야 한다.
'노무현 정부처럼'의 나쁜 본질은 편 가르기, 품위 없음, 사회질서의 어지러움,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 그런 것들이다. 시대여건이나 상황 제약에 의해 더 과소평가된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노무현 정부는 유례가 없는 이런 행태 때문에 많은 부문에서 잘못을 했고 인기와 지지를 잃었다.
노무현 정부의 잘못은 모두 버리고
2008년은 정부 수립 60년이 되는 해다. 갑년(甲年)의 나이가 되는 계기를 맞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당연히 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고 국민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 받드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 60년간 대한민국은 건국 산업화 문민화 민주화 정보화의 힘겨운 도정을 걸어왔다. 그 동안의 성취 위에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대선을 통해 논의하고 정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17대 대선은 시대정신 찾기보다 BBK의 그늘에 가려 쟁투를 벌이는 것으로 끝났다. 그래서 역사상 최악의 대선, 저질 대선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의 개념을 내세워 나라를 이끌어갈 계획을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주화의 바탕 위에 세계 속의 한국, 선진화한 국민, 우리가 창조적으로 주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다만 이 당선자의 지적대로 지난 5년이 전부 잘못됐다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과거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통해 전임 클린턴과는 뭐든 반대로 했다. 한국에서도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과는 뭐든 반대로만 하려 한다면 잘못이다.
계승ㆍ발전시킬 것은 잘 살리도록
노무현 정부의 기여로는 민주화를 공고히 하고 권위주의의 틀을 부숨으로써 사회를 투명하게 만든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돈 안 드는 선거도 노무현 정부에서 정착됐다고 봐야 한다. 노무현시대에는 그 나름대로 역사적 필연과 의미가 있다. 역사에 월반은 없는 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버릴 것만 버리고 계승ㆍ발전시킬 것은 살려야 한다. 제 16대 대선이 실시됐던 2002년부터 한국일보사가 신년사설을 통해 주장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새로운 비전이 절실하다(2002),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2003), 다시 털고 일어서야 한다(2004), 균형과 실용으로 갈등을 넘자(2005),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2006), 나라도 개인도 행복해야 한다(2007).
이 연두의 다짐과 촉구를 잇대어 분석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는 시기에 맞춰 새로운 비전을 기대했다가 점차 실망하게 된 국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2007년의 신년사설 제목대로 이제 나라도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게 된 조건을 갖춘 것인가.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런 기대는 다시 크다. 특히 최초의 CEO대통령이 되는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서는 경제회생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민이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은 대체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국민 대통합, 패거리 코드정치의 종식, 부패 근절과 사회질서 확립, 이런 순서다.
일하는 '부지런한 아침형 나라'로
이 당선자가 열어갈 새로운 사회의 주도층은 종전보다 10여세는 나이든 세대다. 그가 일하는 방식으로 미루어 대한민국은 '부지런한 아침형 나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일은 노련하게, 분위기는 더 젊게'라는 식으로 능률과 실질, 바꿔 말해 실용을 강조하는 활기가 사회 구석구석에 넘치기를 기대한다. 정부ㆍ공공부문이든 교육이든 시급한 개혁에 성과를 거둠으로써 그가 공약한 '국민성공 시대'를 함께 열어 가는 것은 새해의 당연한 기대다.
이명박 정부와 국민이 함께 경계해야 할 것도 많다. 우선 편가르기 문화를 바로잡는다고 새로운 편 가르기를 하면 안 된다. 2007년 신년사설에서도 지적했지만, 그 동안 이 英린?불필요한 좌편향이었다고 해서 그 반동작용처럼 불합리한 우편향으로 가서도 곤란하다.
대선을 통해 다시 입증됐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 지역주의도 문제다. 중요한 것은 통합이며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이다.
새 정부의 이념적 기조는 포용적 자유주의와 창조적 실용주의라고 한다. 성장이 주도하는 균형모델을 지향하는 신 발전체제를 이룩하자는 것이 이념적 기조의 취지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며, 상충되는 듯한 개념의 결합이 지향하는 바도 결국 결국 통합과 관용이다.
이 당선자는 화합 속의 변화와 선진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런 바탕 위에서 경제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국민과 언론은 깨어 있는 자세로 감시해야 한다.
특히 취재지원 선진화라는 야릇한 조치 아래 많은 수난과 수모를 당한 언론은 감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그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이 당선자는 대선기간과 그 이후, 도덕적 비난과 정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사람이다. BBK의혹에 대한 특검도 곧 시작된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문제를 안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역대 어느 정부와도 다르다.
선진화의 방법은 겸손ㆍ정직이라야
당선 후 첫 나들이로 국립묘지를 참배한 그는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재임기간 내내 변하지 말아야 할 다짐이다.
당선 직후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만, 권력에 취하면 초심을 잃게 된다. 겸손과 정직이 선진화의 알찬 속내가 돼야 하며,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실용과 능률에 대한 중시로 인해 경제 일변도의 물신풍조가 더욱 확산되거나 시장경제의 논리에 밀려 문화예술이 상대적으로 경시 당하거나 위축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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