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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실패를 용납 않는 조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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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실패를 용납 않는 조직문화

입력
2007.10.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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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다.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사람을 질책하고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연구개발은 99%의 실패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창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일본 혼다자동차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의 경영철학이다. 실제 혼다는 '올해의 실패왕'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연구자 중에서 가장 큰 실패를 한 직원을 뽑아 100만엔(약 780만원)의 상금을 준다.

직원들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도전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실패라면 오히려 권장하고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는 게 바로 '혼다이즘'의 요체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실패를 용인하는 혼다의 조직문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창조는 시행착오를 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한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서도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 자체를 기피하는 조직문화가 심각하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10년 후의 먹거리를 찾으려면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받는 직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10개 투자하면 7~8개는 실패하는 게 정상인데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9개 성공하고 1개만 실패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실적 부진을 이유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게 과연 현실성이 있습니까." 한 대기업 직원의 항변이다. 지금처럼 철저한 성과주의를 추구하는 조직문화에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 '책임질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보신주의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는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주주자본주의가 오히려 지나친 주주 보호 탓에 투자와 성장을 저해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의 연임 성공 배경을 놓고도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 행장 3년간 후발주자인 신한, 우리은행의 맹추격과 외환은행 인수 실패 등으로 국민은행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는데도,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보다는 배당이익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주주들(전체 지분의 83%)의 신임 덕분에 연임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대기업 오너들의 근시안과 '황제경영'도 문제다.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를 견제하고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는 전혀 갖춰지지 않은 게 우리 기업 현실이다. 사석에서 만난 대기업의 한 임원은 "회장이 관심을 보이는 사안은 뻔히 잘못될 줄 알면서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혼다의 성공에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비결이 숨어 있다. 생산과 연구는 혼다 소이치로가 맡았지만, 나머지는 경영의 달인으로 불린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소이치로는 은퇴하면서 대부분의 주식을 회사에 무상 증여했고, 혼다 이사회에는 혼다 성을 가진 임원이나 감사가 단 한명도 없다. 독자 경영위원회가 오너 집안의 입김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장을 선발한다.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치기 전에, 실패를 용납 하지 않는 구조적 요인들부터 따져보고 고칠 일이다.

고재학 경제산업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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