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김모(26)씨는 최근 카드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체크카드 사용실적이 좋아서 신용카드 발급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김씨가 “일정 소득이 없는데 가능하냐”고 묻자, “과외를 하지 않느냐, 그것도 소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휴대폰에 이어 집으로까지 전화를 걸어 카드 발급을 강요하자 김씨는 아예 카드사에 개인정보 삭제를 요구했다.
# A은행 직원 이모(34ㆍ여)씨는 얼마 전 신용카드 신규회원 300명을 유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터라 손만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
그는“애사심도 좋지만 카드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할당량이 내려오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의 푸념과 달리 이 은행계 카드는 몇 달 새 회원 50만명을 끌어 들였다.
신용카드사의 과당 경쟁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용카드 1억만 장 시대도 다시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7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는 9,210만장으로 2003년(9,551만장) 이후 최대 규모다.
1인 당 신용카드 숫자는 3.9매(경제활동인구 2,369만명 기준)로, 2003년 수준(4.1매)에 육박하고 있다. 주력 사용카드와 사이드(Side)카드를 제외하고도 쓸모없는 카드 2장을 더 지니고 있는 셈이다.
전체 카드 발급 수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카드업계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지속되고 있다. 은행계와 전업계(카드 전문기업) 카드사 간 끝없는 출혈 경쟁으로 신규회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일부 은행계 카드들은‘50만 돌파’, ‘100만 달성’ 등을 앞 다퉈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발급 신용카드 숫자 1억480만장을 기록하다 ‘카드대란’으로 순식간에 몰락했던 2002년을 떠올리면 실적 증가가 그다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올해 초 먼저 선전포고를 한 건 은행계. 은행계는‘무리한 목표량 할당→실적평가 엄포→부서 간 경쟁 심화→협력업체 동원→회원 모집’ 등으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신규회원 가입 실적은 급신장했다.
이로 인해 경쟁사 간‘카드 스와핑’(카드가입 맞교환), 모델하우스 판촉 등이 되살아 나고 부실계약으로 이어질 위험마저 커졌다.
전업계 카드사는 심지어 “은행계 카드사가 은행창구뿐 아니라 전업계에서 빼내간 설계사(모집인) 조직까지 비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은행계가 과당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불평했다.
전업계 카드사는 2002년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터라 무모한 회원 수 늘리기보다 물량 공세에 치중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업계 6곳이 회원 모집 등을 위해 쓴 비용은 2002년(2,531억원) 이후 최대인 1,48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1.5%나 급증했다.
모집비용은 설계사 수당(수수료), 카드 제작비, 회원 유지비(제휴계약 유지, 부가서비스 연계) 등을 포함한다.
이 중 설계사 수당은 1만~2만원에서 3만~5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고, 파격적인 부가서비스를 탑재한 상품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문제는 모집비용이 카드사가 받는 각종 수수료 원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 부담은 회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은행계 카드사는 예금이자와 대출이자 간 차이에 따른 순이자 마진이 축소되면서 새로운 수익 찾기 관점으로, 전업계는 신한과 LG카드의 통합에 따른 시장 격변기를 틈타 고객을 유치하려는 전략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예전의 출혈경쟁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2002년 같은 시스템 위기는 없겠지만 무리한 부가서비스와 모집비용 증가가 계속된다면 도태되는 카드사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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