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희의 여행 / 최금희 지음 / 민들레 발행ㆍ251쪽ㆍ9,000원탈북 여대생이 전하는 생생한 북한의 삶서울 생활을 하며 느끼는 편견과 안타까움도 그려
“추석날엔 작은아버지도 오시고 친척들도 오셨습니다. 친척들과 함께 맞는 추석은 먹을 것으로 가득했고, 잠자리가 비좁았어도 마음은 넉넉했습니다. 가족들의 웃음 소리도 끊이지 않는 날이었습니다.”(32쪽) 이 곳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풍경이 함경북도 은덕군에도 펼쳐지고 있었다. ‘아오지’라고 하면 얼른 알아들을 곳이다.
탈북자 최금희(24)씨에게 올 추석은 각별하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학과(3학년)에 입학하고 서울 생활도 몸에 제법 익긴 했지만, 오늘을 있게 한, 7,000㎞의 천로역정이 때맞춰 한 권의 책으로 거듭난 것이다. 1999년 12월 북경으로 잠적, 길림 – 미얀마 - 방콕을 거쳐 서울의 일상에 안착하기까지의 기록이다. 탈북자 수용소인 하나원의 청소년반(하나둘학교), 지금의 셋넷학교 등 탈북 청소년 교육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
북한에서의 삶을 생생히 써달라는 출판사측의 주문에 그는 신이 났다. 쌔감지(소꿉놀이), 외발기(날이 하나인 썰매), 요거 방꽁(‘요것 봐라’하며 놀리는 말), 벤또(도시락ㆍ북한 표준말로는 ‘곽밥’), 원족(소풍), 얻습니다(여기 있습니다) 등 북한 생활 언어의 잔치가 펼쳐진다. 그뿐 아니다. “서울서 만난 어떤 분은 ‘나 어릴 적 70년대 삶과 똑 같다’고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바로 이렇게 살았다고, 아들한테 꼭 읽힐 거라고 말입니다.” 그는 아직도 서울 사람들의 “…요”체가 입에 붙지 않는다.
책은 지난해 3월 출판사측이 그에게 “어릴 적의 추억을 한국 청소년들에게 얘기하듯 써 달라”고 주문한 결과다. 일단 속도가 붙자 후반부는 스스로 빠져 들어, 1주일만에 완성했을 정도다. 고향땅의 모습이 곧 잡힐 듯 하다. “아오지는 칠순된 국군 포로들이 아직도 많이 삽니다. 잔치, 제사때면 함께 어울립니다.” 두만강 건넌 뒤. 마지막으로 ‘조국땅’에 큰 절을 한 어머니의 모습은 이들의 순박한 심성을 잘 말해 준다.
힘겨웠던 시간도 놓치지 않았다. 95년 식량 사정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거의 죽으로만 연명하는 가족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피를 뽑아 마련한 푼돈으로 밀가루 사 와야 했던 기억은 차라리 가볍다. 이듬해 ‘고난의 행군’ 기간 도중의 공개 처형에 대한 기억은 처참의 극을 달린다.
책은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까지 생생히 기록한다. “탈북자들은 왜 온대? 여기도 굶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리고 쟤내들, 우리 세금 받잖아”, “통일되면 한국이 못 산다고, 그리고 북한 사람들 무섭다고.” 책은 북한 처녀의 남한 관찰기로도 읽힌다. 그래서 최씨는 책을 두고 “울며 웃다 썼다”고 한다.
책은 서울 생활에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서울에서는 아이들 노는 것을 못 봤다. 그 모습은 학원에서 보인다. 한국의 수능날은 서울살이 7년째인 나에게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오늘은 또 어떤 아이가 죽을까.” 성적 비관 자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세대 차가 너무 크고, 외적인 미(美)만 추구한다”며 “(한국은)미국의 복사본”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사상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에 앞서 성분주의, 배고픔이 근본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씨는 “요즘은 현대 중국어를 익히고 있다”며 “북한에 대해 더 공부해 남북간의 소통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가족 6명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국가 대표 선수의 꿈을 키우다, 증조부의 출신 성분(지주) 때문에 군단(군대체육단)에 못 가고 탄광 노동자가 돼야 했던 큰 언니도 또 다른 생을 꿈꾸고 있다. 공부하랴, 셋넷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28~29일 이화여대 생활교육관소극장에서 펼칠 창작 뮤지컬 <나의 길을 보여다오> 준비하랴, 벅찬 한가위다. 나의>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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