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부터 이 달 2일까지 일주일간 열렸던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이 막을 내렸다. 올해는 한국작품 5편을 포함해 35개국에서 만들어진 58편의 다큐멘터리가 초청되었고, 12편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경쟁부문 본선에서 경합을 벌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EBS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외한 본 방송을 모두 접고 하루 평균 10시간씩 다큐멘터리만을 방송했다. 올해는 총 5곳의 외부 상영관에서도 출품작들이 상영됐다.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은 최근 들어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국제영화제에 단순히 하나를 더 한,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영화제가 아니다.
이번 행사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프리 길모어의 말처럼,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은 “다른 영화제에서는 일반적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축제”인데, 그 축제가 바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KBS로 대표되는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이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은 점차 상업화되고 경박해지기만 하는 미디어의 ‘문화적, 공익적 리모델링’을 위한 하나의 전범처럼 다가온다.
언어, 문화, 종교, 국적, 성의 차이를 넘어서는 풍성한 다큐멘터리들에 매혹되어 이 비범한 형식의 문화 축제를 즐기다 보면,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영방송이 어떤 기획을 시도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방송협회와 지상파 3사가 주축이 되어 개최한 ‘2007 서울 드라마 어워즈’ 같은 ‘국적불명’의 엉성한 행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하자는 행사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에 반해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바탕에 깔고 보다 공익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문자 그대로 글로벌하고 ‘초국적’인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는 행사다.
예를 들면, 미국에 이주한 한국인 2세 레지나 미영 박이 만든 <네버 퍼펙트(never perfect)> 라는 작품은, 서구의 미적 기준 앞에서 혼란을 겪는 아시아 여성들의 정체성 문제를, 성형수술을 결정한 한 베트남계 여성에 대한 기술과 인터뷰를 통해 찬찬히 짚어나간다. 네버>
이렇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을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 뚝심 있게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기획은, 시청률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현재의 미디어 지형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문화적 기획과 집행은 EBS가 공영방송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또 공영방송은 이런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보란 듯이 밀어붙임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만으로도 EBS는 KBS 1TV와 2TV 둘을 합친 것 보다 자신이 훨씬 더 공영적인 방송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소위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대표적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인 <독립영화관> 을 폐지하고 를 한밤중 시간대로 내몬 데 비해, EBS는 수능방송의 이미지를 벗어나 착실하게 지식채널, 문화채널로서의 정체성을 쌓아가고 있다. 독립영화관>
최근 EBS가 KBS로부터 받는 수신료의 배분 비율 조정을 놓고 양사가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지금 어느 방송사가 더 공영방송답게 방송을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 공영방송답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본다면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답은 자명하다.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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