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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사쿠란' 벚꽃과 금붕어 그리고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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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사쿠란' 벚꽃과 금붕어 그리고 허무

입력
2007.09.1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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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를 보다 보면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왜 그렇게 사람을 꽃에 비유하는 경우가 잦을까. <하나와 앨리스> 에서 꽃과 소녀들, 발레복과 연녹색 이파리, 벚꽃과 낙엽이 어우러어지는 로맨틱문고의 책갈피 사이에서 소녀들은 질투하고 경쟁하고 사춘기의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다.

원하는 게 있으면 꼭 소유해야 하는 주인공 하나는 친한 친구의 남친을 빼앗을 만큼 시샘이 만땅인데, 이름답게 하나의 집엔 한 무리의 꽃이 그득하다.

그런가 하면 사무라이 영화 <하나> 의 원제목은 ‘꽃보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그 의미인즉슨 사무라이의 외양보다, 즉 ’꽃보다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유명한 일본속담에도 여실히 드러나듯, 일본 문화 안에서 흔히 꽃 하면 남자는 사무라이, 여자는 어여쁜 소녀나 게이샤를 의미하기 일쑤다.

한번 화려하게 피고 나서는 무상하게 지는 꽃은 단 한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사무라이의 검이나, 아름답기는 하지만 감히 범접하기 힘든 게이샤를 지칭할 때 모든 일본의 미학을 집약하는 것 같은 메타포가 된다.

<사쿠란> 에서도 어김없이 게이샤 키요하는 금붕어 혹은 벚꽃에 비유된다. 아름답지만 어항에 갇혀 지내야 하는 금붕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뭍 남성에게 몸을 주는 키요하는 일종의 호화롭게 장식된 ‘조화’ 혹은 ‘죽은 꽃’이다. 그녀는 유곽 안에 있는 벚나무에 꽃이 피는 때에 반드시 유곽을 빠져나가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카메라는 부드럽게 여주인공 츠치야 안나의 얼굴을 핥고, 찰그랑거리는 구슬소리,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에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추임새로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쿠란> 은 화려하게 치장한 유미주의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뇌쇄적인 게이샤 세계를 붉은 빚깔이 감도는 현란한 미장센으로 치장한 니나가와 미카 감독의 영화는 말 그대로 온갖 꽃들이 피고 지며, 눈과 귀를 유혹하는 한편의 사진첩을 본 것만 같다. 시이나 링고가 노래를 부르고, 안노 모요코의 원작을 영화화한, 온통 일본의 가장 잘 가는 여성들이 <사쿠란> 에서 뭉쳤는데도 말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역시 꽃이나 눈 같은 종국에는 허무의 늪으로 빠질 시각적 나르시즘에 집착하는 일본문화의 한 속성이 기여를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연인이 죽은 겨울 산에서 “오겡끼 데쓰카(잘 있으세요?)”를 부르짖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자연의 맨 얼굴에서 그리움의 정한을 찾는, 그러면서도 하릴없는 대상 부재의 나르시시즘에 빠진 일본문화의 어떤 면.

그 대상 부재의 미학이 전도되면, 거의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아닌 ‘블루에 가까운 투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표현되지 않는 표현’이 끓어 넘쳐, 사방이 온통 완벽하게 치장된 인공낙원에서 피고 지는 뽀얀 게시야의 얼굴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집까지 쫓아가서 쏟아지는 빗속에서 남자를 보며 키요하는 “웃는다. 귀신이 웃는다”고 되뇐다. 지극히 여성적인 자각이 들어가있는 한 순간을 되새기며 역시 <사쿠란> 의 화려한 미장센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하고 싶다. “아! 웃는다. 귀신이 웃는다.”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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