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로부터 시작된 학력위조 파문이 문화계와 연예계 그리고 종교계 등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가짜학위 논란의 배경에는 소위 '가방끈'이 긴 것을 지식인의 기준으로 여겨온 우리 사회의 문화 환경이 깔려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인재 공급을 담당한 대학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학위를 양산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이 기회에 각 분야에서 가짜 학력으로 활동 중인 사람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함은 물론이다. 엄격한 학력 검증 시스템의 정착과 함께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학벌·학연주의의 폐해를 줄여나가는 국민적 반성이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뉴스보도 형태로 보아서는 이번 가짜학위 파문도 다른 이슈들처럼 일시적 사회현상으로 소멸될 공산이 크다. 관계 기관이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언론이 선정적, 예외적, 인간적 흥미를 유발하는 뉴스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 에피소드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장미희나 '대조영'으로 열연하는 최수종, 한국의 '미스터 빈'을 꿈꾸는 심형래의 대학 학력 여부가 그들의 연기력이나 창의성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오히려 기성 교육의 틀에 갇히지 않고 학력 콤플렉스를 이겨내려는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정상에 서는 성과를 얻어낸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들 연예인의 허위 학력 논란은 그동안 "공인의 거짓말"이란 뉴스 프레임으로 보도돼 왔다. 하지만 한 자연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력 콤플렉스에 의한 개인적 정체성 문제"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기회에 양심선언을 하는 연예인이 줄을 서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번 뉴스보도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점은 왜 연예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학력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느냐는 문제이다. 대한민국 뉴스보도에선 만만한 게 연예인인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인지 언론에 호의적으로 쉽게 표출되면서도 또 빈번하게 비리나 일탈행위의 표적이 된다.
네티즌의 높은 관심과 활발한 토론이 주류 언론인 신문과 방송의 뉴스취재로 이어지는 형상까지 보인다. 하지만 문화 예술계의 가짜 학력보다는 정치, 경제, 행정, 의료계 등 힘 있는 분야의 학력위조가 사회에 더 심각한 폐해를 끼칠 수 있다. 그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기대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교육기관이 발급하는 학위증만으로 학력의 진위를 구별하는 데도 함정이 있다. 지금은 개선 중이지만, 과거에는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학교 운동선수에게 졸업장을 주는 사례가 허다했다.
사실 4년 내내 운동만 하다가 졸업을 한 이들에게는 대학 학사증이 족쇄가 될 수 있다. 그 기간에 외국에 나가 더 나은 훈련을 받거나 국내 프로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대학의 석사와 박사학위도 글로벌 시대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졸업생을 배출한다고 자신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개교 이래 지난 수십년간 학사관리를 철저히 해온 서강대와 지방에서 국제화 프로그램을 알차게 운영해온 계명대 출신의 약진을 개인적으로 목격했다.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 구축이야말로 이번 가짜학위 파문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깊이 논의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는 유명 연예인의 허위 학력에 따른 도덕성 논쟁보다는 대학교육의 시스템 정비와 질적 향상으로 언론보도의 방향을 잡아갔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짜학위 뉴스 물결(news wave)은 아무 성과도 없이 또다시 일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연예인의 허위 학력 논란이 우리사회가 한 단계 진보하는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도록 뉴스 물결의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한다.
김영찬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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