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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명박 후보의 대세와 운

입력
2007.08.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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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를 다녀오신 장모님이 아침 식탁에서 동네 할머니들의 분위기를 전하신다.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 됐으니 경제를 살려낼 거래. 그런데 다들 박근혜가 참 안됐다는 거야." 우리 동네 할머니들도 박 전 대표의 선전과 깨끗한 승복에 감동을 먹었음이 분명하다.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장에서 보여준 태도는 정말 놀라웠다. 잔잔한 미소까지 띤 채 자세 한번 흐트리지 않고 또박또박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하는 모습에서는 소름이 다 끼쳤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외에 그에게 뭐가 있느냐고 냉소하지만 막상 박 전 대표를 가까이서 본 이들은 "간단치 않은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 박근혜 신드롬에 쫓긴 이 후보

투표 이틀 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던 마지막 합동연설회에 일반국민선거인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던 한 주부는 거기서 이미 박근혜 신드롬을 느꼈다고 했다. 중립지대의 참석자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박 전 대표에게 적잖이 감동한 눈치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적어도 부동층의 대부분이 박 전 대표를 찍었고, 그것이 선거인단 투표에선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보다 432표를 더 얻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이 전 시장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보다 8.5% 포인트(표로 환산해서 2,884표)를 더 얻어 1.5%포인트 간발의 차로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이 전 시장 참모들은 "(토끼) 용궁 갔다 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상하다고 하는 여론조사 반영 덕분에 간신히 패배를 면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일반 국민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킬 기회를 더 가졌더라면, 이 전 시장에게 불리한 이슈들이 제기된 순간마다 때맞춰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대형 뉴스들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 수 있다. 이 전 시장에겐 천운이 따른 셈이다.

이 전 시장이 위장전입을 시인한 것이 6월 16일이었는데 6월 25일 한국인 13명을 태운 캄보디아 여객기가 추락했다.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가 열려 도곡동 땅을 비롯한 이 전 시장의 차명 부동산 의혹이 본격 제기됐는데 바로 이날 21명의 한국인 남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다.

도곡동 땅은 이 전 시장 큰 형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의 소유인 것으로 보인다는 검찰 중간수사 발표가 있던 8월 13일 아프간 여성인질 2명이 풀려나 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했다. 그 닷새 전에는 7년 만의 2차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전격적으로 발표돼 국민의 관심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국정원의 이 전 시장 X파일 작성 의혹이 아니었나 싶다. 이 전 시장측의 이재오 최고위원이 처음 의혹을 제기한 것이 7월 8일이었고 국정원은 며칠 안 지나 5급 직원이 이 전 시장의 처남 부동산을 뒷조사했다고 실토했다. 이 전 시장측은 국정원과 청와대의 '이명박 죽이기' 음모라고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그에 앞서 7월 4일 이 전 시장측에 가까운 정형근 의원 등이 주도한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이 발표됐다. 박 전 대표는 상호주의를 포기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강력 비난했다.

박 전 대표측이 이를 고리 삼아 이 전 시장측을 상대로 대대적인 색깔 공세를 폈다면 북한 문제에 민감한 한나라당 지지층의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을 터.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국정원 이명박 X파일 논란 속에서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 여전히 험난해 보이는 대선 길

이 전 시장은 이번 대선 국면의 시대정신인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가장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번 경선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20, 30대 지지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로 형성된 대세가 부동산 의혹 검증 공세에, 박 전 대표의 침착하고 안정된 논리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50%가 넘는 한나라당 지지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대선 고지로 향하는 이명박 후보의 앞길이 험난해 보이는 이유다. 또 어떤 운이 따라줄지 모르지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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