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차이무의 신작 <변> 의 주인공 변학도 역을 나눠 맡은 배우 문성근과 강신일은 연우무대의 연극 <칠수와 만수> 가 초연된 1986년, 칠수와 만수로 처음 만났다. 문성근은 300회를 했고, 강신일은 그보다 200회를 더 했다. 칠수와> 변>
그 이후로 몇 편을 함께 했냐는 질문에 문성근이 “2년 전 차이무 10주년 연극 <마르고 닳도록> 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하자 강신일이 “<4월9일>도 있었고, <늙은 도둑 이야기> 도 있었지”라며 바로잡는다. 늙은> 마르고>
“얘는 아직 젊어서(강신일이 문성근보다 7년 아래) 기억력이 좋다”며 너털웃음을 지은 문성근은 “어느 한의사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칠수와 만수> 는 정말 기가 막힌 캐스팅이었다고 하더라. 나는 소양인, 강신일은 태음인이기 때문에 붙여 놓으면 화학 작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데, 실제로도 그랬다”고 21년 전을 회상했다. “전 일찌감치 칠수 역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공연 한 달 전까지 만수를 연기할 배우를 찾지 못했어요. 신일이가 군에서 갓 제대하고 연우무대에 들어왔을 때 보는 순간 다들 ‘만수다’ 그랬죠.” 칠수와>
강신일은 “내가 그렇게 촌스럽게 생겼나”며 느릿하게 입을 뗐다. “형은 딱 봐도 회색 도시의 창백한 지식인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나는 만수부터 시작해서 늘 촌놈, 아니면 피해자 같은, 형과는 상반된 역할들만 했죠. 그래서 작년에 이번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랬어요. 왜 나는 된장 냄새 나는 것만 시키냐, 나도 지식인 역할 좀 시켜달라구요.”
<변> 은 황지우 시인의 원작을 <칠수와 만수> <비언소> <늙은 도둑 이야기> 등을 만든 연출가 이상우가 개작, 연출하는 작품이다. <춘향전> 을 바탕으로 했지만, 춘향도, 이몽룡도 나오지 않는다. 성균관 79학번의 시인으로, 관아 일은 친구에게 맡겨버린 채 춘향을 향해 공허한 연애시만 읊어대는 변학도가 주인공이다. 춘향전> 늙은> 비언소> 칠수와> 변>
실세와 배후를 자처하는 아전과 기생들은 대책회의를 하느라 분주하지만 정작 권력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비방(비밀중앙정보방)은 ‘사회정화 비상특별조치 1호’를 발동해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
변학도의 생일날 반란이 일어나자 변학도는 “아무리 내 목을 베고 또 베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사람들은 잊어버리니까. 그것도 아주 빨리.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떠난다. 독재자에 대한, 그리고 독재자를 쉽게 용서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날선 풍자다. 배경 역시 ‘조선 왕조 중간 어디쯤, 아니면 20세기 말 대한민국 어디쯤’으로 되어있다.
둘이 연기하는 변학도는 같지만 다르다. 문성근은 전라도 남원을 배경으로 하는 ‘변라도’팀을, 강신일은 경상도 안동을 배경으로 하는 ‘변상도’ 팀을 이끈다. 단순히 두 팀이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를 뿐 아니라, 배우에 따라 캐릭터도 달라진다. 문성근은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척 하는 독재자, 강신일은 밀어붙이는 유형의 독재자를 표상한다는 게 연출가의 설명이다.
문성근은 “두 팀의 공연이 다를 뿐 아니라, 같은 팀이라도 연습 때마다 매번 다른, 매우 혼란스러운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대본은 참고자료일 뿐이고, 애드립이 반 이상이에요. 나는 애드립이 약한 사람인 데다 영화 하느라 연극을 많이 못해서 젊은 후배들 순발력을 따라 잡기가 힘들어요.”
<변> 에는 이상우 연출과 문성근, 강신일 외에 최용민, 김승욱, 박광정 등 연우무대 시절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멤버들이 출연한다. 강신일은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연출가의 뜻을 아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은 ‘난장판’ 같은 형식 때문일 것”이라면서 “배우들이 개성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풀어놓게 한 뒤 깎아내는 것이 이상우 연출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변>
2년 만에 연극에 출연하는 문성근은 “<마르고 닳도록> 이후 2년마다 옛 멤버들이 모여서 비엔날레 하듯 놀아보자고 약속했다”면서 “때 끼고 녹슨 것을 벗겨낼 수 있는 작업인 동시에 타성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들은 이번 연극을 하면서 돈 얘기는 해본 적도 없다. 마르고>
나중에 결산을 해서 후배들부터 출연료를 챙겨주기로 했기 때문에 고참들은 사실상 개런티가 없는 셈이다. 강신일은 “20년 전 연우무대부터 이어져온 관습이고, 예전에 선배들한테 빚진 것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31일부터 9월1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 3673-5580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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