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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변' 주인공 문성근·강신일 "색다르게 놀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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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변' 주인공 문성근·강신일 "색다르게 놀아보렵니다"

입력
2007.08.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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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차이무의 신작 <변> 의 주인공 변학도 역을 나눠 맡은 배우 문성근과 강신일은 연우무대의 연극 <칠수와 만수> 가 초연된 1986년, 칠수와 만수로 처음 만났다. 문성근은 300회를 했고, 강신일은 그보다 200회를 더 했다.

그 이후로 몇 편을 함께 했냐는 질문에 문성근이 “2년 전 차이무 10주년 연극 <마르고 닳도록> 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하자 강신일이 “<4월9일>도 있었고, <늙은 도둑 이야기> 도 있었지”라며 바로잡는다.

“얘는 아직 젊어서(강신일이 문성근보다 7년 아래) 기억력이 좋다”며 너털웃음을 지은 문성근은 “어느 한의사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칠수와 만수> 는 정말 기가 막힌 캐스팅이었다고 하더라. 나는 소양인, 강신일은 태음인이기 때문에 붙여 놓으면 화학 작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데, 실제로도 그랬다”고 21년 전을 회상했다. “전 일찌감치 칠수 역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공연 한 달 전까지 만수를 연기할 배우를 찾지 못했어요. 신일이가 군에서 갓 제대하고 연우무대에 들어왔을 때 보는 순간 다들 ‘만수다’ 그랬죠.”

강신일은 “내가 그렇게 촌스럽게 생겼나”며 느릿하게 입을 뗐다. “형은 딱 봐도 회색 도시의 창백한 지식인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나는 만수부터 시작해서 늘 촌놈, 아니면 피해자 같은, 형과는 상반된 역할들만 했죠. 그래서 작년에 이번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랬어요. 왜 나는 된장 냄새 나는 것만 시키냐, 나도 지식인 역할 좀 시켜달라구요.”

<변> 은 황지우 시인의 원작을 <칠수와 만수> <비언소> <늙은 도둑 이야기> 등을 만든 연출가 이상우가 개작, 연출하는 작품이다. <춘향전> 을 바탕으로 했지만, 춘향도, 이몽룡도 나오지 않는다. 성균관 79학번의 시인으로, 관아 일은 친구에게 맡겨버린 채 춘향을 향해 공허한 연애시만 읊어대는 변학도가 주인공이다.

실세와 배후를 자처하는 아전과 기생들은 대책회의를 하느라 분주하지만 정작 권력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비방(비밀중앙정보방)은 ‘사회정화 비상특별조치 1호’를 발동해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

변학도의 생일날 반란이 일어나자 변학도는 “아무리 내 목을 베고 또 베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사람들은 잊어버리니까. 그것도 아주 빨리.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떠난다. 독재자에 대한, 그리고 독재자를 쉽게 용서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날선 풍자다. 배경 역시 ‘조선 왕조 중간 어디쯤, 아니면 20세기 말 대한민국 어디쯤’으로 되어있다.

둘이 연기하는 변학도는 같지만 다르다. 문성근은 전라도 남원을 배경으로 하는 ‘변라도’팀을, 강신일은 경상도 안동을 배경으로 하는 ‘변상도’ 팀을 이끈다. 단순히 두 팀이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를 뿐 아니라, 배우에 따라 캐릭터도 달라진다. 문성근은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척 하는 독재자, 강신일은 밀어붙이는 유형의 독재자를 표상한다는 게 연출가의 설명이다.

문성근은 “두 팀의 공연이 다를 뿐 아니라, 같은 팀이라도 연습 때마다 매번 다른, 매우 혼란스러운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대본은 참고자료일 뿐이고, 애드립이 반 이상이에요. 나는 애드립이 약한 사람인 데다 영화 하느라 연극을 많이 못해서 젊은 후배들 순발력을 따라 잡기가 힘들어요.”

<변> 에는 이상우 연출과 문성근, 강신일 외에 최용민, 김승욱, 박광정 등 연우무대 시절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멤버들이 출연한다. 강신일은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연출가의 뜻을 아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은 ‘난장판’ 같은 형식 때문일 것”이라면서 “배우들이 개성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풀어놓게 한 뒤 깎아내는 것이 이상우 연출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연극에 출연하는 문성근은 “<마르고 닳도록> 이후 2년마다 옛 멤버들이 모여서 비엔날레 하듯 놀아보자고 약속했다”면서 “때 끼고 녹슨 것을 벗겨낼 수 있는 작업인 동시에 타성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들은 이번 연극을 하면서 돈 얘기는 해본 적도 없다.

나중에 결산을 해서 후배들부터 출연료를 챙겨주기로 했기 때문에 고참들은 사실상 개런티가 없는 셈이다. 강신일은 “20년 전 연우무대부터 이어져온 관습이고, 예전에 선배들한테 빚진 것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31일부터 9월1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 3673-5580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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