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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프간 피랍사태 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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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프간 피랍사태 小考

입력
2007.08.0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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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발생한 지 20일째. 피랍자의 생명을 놓고 진행 중인 정부와 탈레반 간 협상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억류 피랍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고 배형규 목사, 심성민 씨에 이어 추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피랍사태 발생 이후 우리 사회에선 다양한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 역할과 책임, 정부와 국민의 신뢰 관계, 기독교의 성장과 폐단에 대한 논란과 내부 이념 갈등 등이 그것이다. 대체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들인데, 긍적적 시선으로 본다면 피랍사태는 그런 고질병들을 의제화해 공론에 부침으로써 개선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김선일씨 피살 사건 당시 언론들은 국민 생명과 국가 안전을 다루는 안보시스템의 근본적 점검, 국제테러에 대한 정보 수집과 종합 분석 기능의 완비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를 정비하지 않으면 ‘제2의 김선일 사건’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본보 2004년 6월26일자 사설)

그러나 불행히도 우려는 현실이 됐다. 3년이 지났지만 외교는, 정부의 국민 보호 능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피랍 사태 이후 정부가 허둥대던 모습은 자국민에 대한 테러나 납치 상황 발생시 가동돼야 할 대응 시스템이 정말 있는 것인지, 있다 해도 제대로 작동이나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미국 일본 등 강대국에 집중된 ‘외교 편식증’에 대한 우려도 높다. 이번 사태는 중동의 반미 성향 국가에 대한 우리 외교가 ‘젬병이’ 수준임을 확인시켜줬다. 전문 인력도, 현지 인적 네트워크도 없으니 정보가 있을 리 없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외교력을 갖추지 않는 한 한국은 ‘외교 약소국’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경제ㆍ외교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자성도 있어야 한다. 공직자라면 공항에 세워진 아프간 여행 자제 권고문이 왜 무시당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 말과 반대로 하면 돈 번다’던 부동산 시장의 믿음이 조금씩 무너져 가는 과정을 돌아 보자. 깨끗하고 투명한 정책, 공정하고 일관된 정책을 씨줄과 날줄 삼아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의 그물’을 짜서 실행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고질병은 또 어떤가. 보수 세력은 진보 진영의 ‘미국 역할론’과 ‘미국 책임론’을 ‘반미’로 규정하며 피랍 사태를 반미와 친미의 싸움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2002년 6월 미군에 의한 효순ㆍ미선양 사망사건 이후 확산된 반미 감정이 대선 패배의 요인이 됐다는 학습효과의 영향 아닌가 싶은데, 보수ㆍ진보 세력 간 이념적 전선을 형성해 연말 대선에 활용하려는 의도로도 읽혀 씁쓸하다. 피랍자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이념전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

개신교계는 자신들에게 왜 비난이 쏟아졌는지 반성해야 한다. 일반의 곱지 않은 시선과 그에 따른 신자수 감소 등 위축된 교세를 되살리기 위한 해외 선교,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채 내 것이 옳으니 받아들이라는 식의 정복주의적 해외 선교는 지양해야 한다.

피랍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과 고통을 목도하며 보낸 20일을 곰곰 되씹어보면서 해본 단상들이다.

황상진 사회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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