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 북하우스디트로이트 폭동과 아레사 프랭클린
1967년 7월 23일, LA폭동(1992) 이전 사상 최대 규모였던 미국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이 일어났다.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눠지듯, 미국 최대의 자동차공업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8마일 로드'라는 도로를 경계로 갈라진다. 20세기초 흑인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자 백인들이 8마일 로드 북쪽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인종ㆍ빈부의 경계선이 돼버린 것이다.
디트로이트 폭동은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일어난 흑인 민권운동이었다. 백인 경찰이 집회를 가졌다는 이유로 한여름밤 술집에 있던 수십명의 흑인 손님들을 연행하자,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5일간 내전을 방불케하는 소요사태로 43명이 사망했다. 존슨 당시 대통령의 말마따나 "참으로 뜨겁고 괴로운 여름"이었다.
당시 흑인들의 저항의 상징으로, 시위대의 찬가로 불렸던 음악이 아레사 프랭클린(65)의 '리스펙트(Respect)'란 노래다. 제목처럼 흑인들의 인간적 존중에 대한 요구였다. 백인의 멸시에 맞서듯, 목청껏 질러대는 샤우트 창법을 특징으로 하는 솔(soul)은 이때부터 흑인음악을 대표하는 장르가 됐다.
그것은 노래하는 자의 혼과 결부되어 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지금까지 '레이디 솔'로 불린다. 지난해 숨진 '솔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1933~2006)은 "솔 음악과 민권운동은 손에 손잡고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디트로이트의 8마일 로드는 여전한 빈부의 경계다. 최고의 백인 래퍼로 꼽히는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 <8마일>(2002)은 암울하게 쇠락한 이 도시의 빈민촌에서 힙합 음악을 생의 탈출구로 삼아 살아가는 백인 청년의 이야기다.
임진모(48)는 <젊음의 코드, 록> 에서 이런 대중음악의 사회성, 그 내면적 폭발성과 역사를 알기 쉽게 전해준다. 젊음의>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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