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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책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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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책은 얼굴

입력
2007.05.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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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들킬세라 이불을 뒤집어쓴 채 플래시 불빛으로 밤새 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다. 그 당시 내 마음을 제일 흔들어 놓았던 것은 <보물섬> 같은 소년소녀 모험소설이었다. 작은 소년과 무서운 해적들과의 대결구조였기에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으며, 나중에 텔레비전을 통해 일본 만화로도 열심히 시청한 기억이 생생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내가 알고 있던 분위기와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마지막 회까지 빼먹지 않고 지켜봤는데, 그 덕분에 진작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외다리 존 실버 선장은 처음엔 호탕하고 성실한, 배의 요리사로 등장하는데 그 남자답고 잘생긴 얼굴이란 가슴이 다 설렐 정도였다.

그런데 해적의 우두머리라는 정체가 드러나면서 잔혹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이면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게 웬일인가, 그 하얀 미소가 눈부신 멋진 미남이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하, 똑같은 사람이라도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에 따라 이렇게 달라 보이는구나. 그러니 생긴 겉 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절대로 안 되겠구나.

허나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판단의 잣대로 삼을 것인가. 옷차림? 말? 눈빛? 15년 넘게 책을 만들고 있는 나는 언젠가부터 그 사람이 들여다보고 있는 책으로 주인을 판단하는 경우가 가장 허다하다.

남의 신발만 쳐다보는 구두 장수처럼 책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뭘 읽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고개를 어색하게 모로 돌려가면서까지 책 표지를 힐끔 쳐다보고 나서 책 주인의 대략적인 지적 수준이나 요즘 관심사가 뭔지를 짐작하곤 한다.

허름한 옷차림에 면도를 안 한 턱이 지저분해도 그가 들고 있는 책이 어려운 인문서라면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차려입었어도 대여소의 무협지 같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처음 느꼈던 매력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남의 집에 가서도 나는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책장부터 들여다본다. 내게 있어 책은 곧 그 사람의 얼굴이며 인격이며 관심사며 지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자, 요즘 당신 손에는 어떤 책이 들려 있는가.

이영미ㆍ웅진지식하우스 문학출판 임프린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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