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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내가 그려본 '빛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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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내가 그려본 '빛의 제국'

입력
2007.03.0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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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전시장을 다녀왔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몇 시간 동안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구경하자니,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게 뒤섞는 그의 방법론 정도는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았던 작품은 몇 개의 불빛을 제외하곤 밤의 옷자락에 휩싸인 저택과 그 위에 청명하고 아름다운 낮의 하늘이 공존하는 그림이다.

● 마그리트의 기묘한 아름다움

밤은 밤대로 익숙하고 낮은 낮대로 익숙하건만 그 둘이 함께 배치된 한 편의 그림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빛의 제국> 이라는 특별한 제목이 붙어 있어 그 작품을 보면 빛이 어둠을 잉태한 밝음이며, 존재란 청명한 의식만이 아니라 어두운 무의식이 공존하는 심연이란 느낌도 들었다. 그림이 철학이나 시가 되는 특별한 순간!

현대 예술이 갈망했던 새로움이 생뚱맞은 진기함이 아니라 익숙함을 다르게 배치하는 시선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시선이 그저 새로움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좀더 깊이 보려는 고민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에 나는 잠시 <빛의 제국> 앞에 서 있었다.

부록처럼 바다 밖의 새로움을 ?기에 분주했던 한국적 근대, 새로움은 언제나 멀리 있지 익숙한 우리 존재와는 별개라는 기이한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맹목적으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에 집착하며 그 사이에서 분열하는, 마샬 버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개발의 모더니즘'도 반추하면서 말이다.

그 뒤로 나는 간혹 밤과 낮을 이어붙이는 마그리트 놀이를 시도해본다. 뉴스를 접하다 무작위로 눈에 뜨이는 사건들을 연결시켜 보는 것인데, 그러다보면 우리 사회의 심연을 발견하거나 전체적 상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진보 논쟁, 강남의 변태 룸살롱, 이라크 재파병이라는 꼭짓점들을 연결해보기, 혹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문열, 여중생에 대한 집단 폭행사건 같은 파편적인 기사들을 연결하면 어떤 삼각형이 나올지 그려보는 식이다.

서투른 초심자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연결한 가상의 그림들은 반복적으로 당파성, 섹스, 죽음에 대한 충동, 불안함 같은 것으로 기울어졌다.

가령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점점 더 세분화되고 과격해지는 분열과 시비 가르기가 정점에 있고, 중간 지대는 출산율 최저점을 기록하는 국가이면서도 음성적으로 비정상적이며 공격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기이한 에로스의 영역이 있다.

● 우리사회 어둠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하부지대에 어두운 죽음의 심연, 자살하거나 13세 소녀부터 20대의 청년 병사에 이르기까지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연약한 개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추악한 집단의 힘이 놓여 있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함에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기라도 한 듯 넋 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완성한 그림은 아름다운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과 달리 거대한 생식기와 누군가를 칠 준비가 되어있는 불끈 쥔 두 주먹과 붉은 입술, '불안'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눈동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이상한 몸이다. 이름하여 빛 한 줌 없는 <어둠의 제국> .

김명화 극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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