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부총리 겸 국방장관의 기이한 모습이 실린 외신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야전 쌍안경의 렌즈덮개를 열지 않은 채 군 기동훈련 광경을 살피고 있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늘 전쟁상태인 이스라엘의 국방책임자가 군용 망원경 사용법을 몰라 우스꽝스러운 꼴을 연출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그러나 세 차례나 같은 모습을 보였고, 곁에 있던 육군참모총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오히려 의아한 느낌이 든다. 혹시 흔한 렌즈 망원경이 아니라 첨단장비는 아닐까 하는 궁금증마저 갖게 한다.
■페레츠 장관은 육군 대위 출신의 상이용사다. 그는 정예 공수부대 탄약병기장교로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에 참전했다 부상, 휠체어에 의지하는 중증 장애인이 됐다. 예편 뒤 고향에서 화훼 농사를 짓다가 83년 좌파 노동당 후보로 시장 선거에서 당선, 정치에 입문했다.
88년 의회로 진출한 뒤 95년 노동당 기반조직인 노조연맹 의장에 선출돼 각광을 받았고, 2005년 원로 시몬 페레스를 꺾고 당수가 됐다. 이어 지난해 총선에서 노동당을 원내 제 2당으로 이끌어 올머트 총리의 우파 카디마당과 연정을 구성, 정부 2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연정 협상 때부터 전설적 전쟁 영웅 모세 다얀 등 역대 장관에 비해 군 경력이 짧아 국방장관으로 부적합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참전 경험까지 있는 장교 출신이 쌍안경 사용법을 모르거나 잊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무심코 덮개가 닫힌 쌍안경을 들여다봤다면 이내 덮개를 제칠 일이다.
깜깜한 망원경 속에 뭐가 보이는 척 고개를 끄덕일 리 없다. 훈련 참관보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번번이 덮개 닫힌 쌍안경을 눈에 댔다가 그냥 놓았을 수도 있겠다. 이걸 절묘하게 포착한 언론이 악의적 설명을 붙인 것으로 의심할 구석이 있다.
■사진을 보도한 미국 AP통신은 페레츠 장관이 지난해 7월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을 한달 동안이나 공격하고도 제압에 실패, 여론의 사임 압력에 시달려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Peace Now'라는 평화운동을 주도하며 우파의 강경한 안보정책에 맞선 자세를 허물고 레바논을 침공, “평화의 백기사에서 전쟁광으로 전락했다”는 거센 비판에 몰린 처지다. 이 때문에 경황이 없어 혼미한 모습을 보인 것일까. 그렇게 믿기 어렵다면 역시 이 사진은 좌파 평화주의자 국방장관을 음해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볼만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