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정권들은 임기 말 사정기관의 핵심인 검찰을 제어하는 방향을 두고 적어도 두 가지 고민을 해야 했다. 정권의 근간을 위협하는 권력형 범죄가 터졌을 때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느냐, 검찰권의 행사로 다음 정권의 탄생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자의 고민이 권력의 자기 생존 본능이었다면 후자에는 단임 정권의 한계를 이겨내려는 보다 적극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임기 말 난제에 대한 해법을 인사를 통한 간접통제에서 찾았다. 군사 정권 때처럼'알아서 기는'검찰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맞아 핵심 요직에 심어 둔 자기사람만이 보호막이 돼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문제는 믿을 만한 제 편을 요직에 앉히려면 파행적 인사가 불가피했다는 점이다. 검찰의 내부 논리가 무시된 인사는 필연적으로 검찰 내부의 불만을 촉발하기 마련이다. 그 갈등 구조가 오히려 권력누수를 앞당김으로써 두 정부를'보호막의 덫'으로 몰아갔다.
김영삼 정부는 잔여 임기를 1년 앞둔 1997년 1월 검찰 개편을 통해 친정 체제를 굳히려 했다. 차남 현철씨의 한보 비리 연루 의혹이 커지던 시점이었다. 이 인사로 검찰총장과 서울지검장, 대검 공안부장과 중수부장이 모두 PK 인맥으로 채워졌다.
압권은 특수수사 경력이 없는 공안통을 수사의 야전사령관격인 대검 중수부장에 보임한 것이었다. 공안부와 특수부로 양분되는 검찰의 인사 패턴을 흔들어버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 인사는 '대통령 아들'보호를 위한 고육책이라는 비난을 자초함으로써 오히려 정권에 부담을 안겼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한보 수사 실패의 책임을 물어 2달 만에 중수부장을 전격 교체하는 것으로 여론을 무마해야 했다. 후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수수사통이 맡아 김현철씨 구속을 끌어냈다.
김대중 정부도 임기 말 연고주의 인사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청와대 사정 라인과 검찰총장을 비롯, 검찰 수사의 핵심 라인을 호남 지역인사로 채움으로써 임기 말 안전망을 짜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용호 최규선 게이트 등 잇달아 터진 권력형 비리에 검찰 간부들이 연루되면서 방패망은 스스로 무너졌다. 그 결과 김 대통령은 두 아들이 비리 사건으로 구속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정권이 보여준 실패의 교훈은 현 정부에도 유효하다. 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권과는 달리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롭다고 공언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레임 덕 시기에 불어오는 정치적 풍파로 정권이 의도하지 않는 게이트 정국이 만들어졌던 게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수뢰 사건이 아니더라도 YS때는 북풍 사건이, DJ 때는 병풍 사건이 터져 검찰 수사가 정치적 풍향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다면 노 정부 역시 인사를 통한 검찰권 제어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지 모른다.
조만간 대대적인 검찰 간부 인사가 예정돼 있다. 검찰총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리가 바뀌는 메머드급 인사가 될 전망이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검찰 내부 논리보다는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여지가 크다.
만일 현 정부가 인사로 집권 말기 검찰을 제어하려는 유혹을 느낀다면 이전 정부들의 전철을 살펴보길 바란다. 검찰 순리에 맡겨 두는 게 1년 남은 임기를 온전하게 마무리하는 길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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