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우리 시대의 명저 50] <2>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알림

[우리 시대의 명저 50] <2>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입력
2007.01.11 23:50
0 0

이이화(70), 그리고 그의 <한국사 이야기> (한길사)가 거느린 숱한 ‘이야기’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그의 실체 또 책의 가치 속으로 스며들기란 쉽지 않다. 한국 역사학에서 그의 책이 놓인 지점이 그만큼 독특하고, ‘재야 사학자’로서 학인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이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이다.

근 10년에 걸쳐 기획ㆍ저술한 원고지 2만5,000매 분량의 책(전22권). 민중사ㆍ생활사를 포괄하는 한국사 전사(全史)이자 통사(通史). 한학을 하다 16세에 가출해 고아원과 여관 ‘보이’ 등을 전전하며 고학해온, 실로 파란만장한 사적 생애. 한문 선생으로, 고문서 해제 주역으로, 역사기행의 선구적 안내자로, 명(名)강연자로,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맴버이자 좌장으로, 근년 들어서는 동학 한국전쟁 고구려사와 관련한 기관ㆍ단체의 장으로 이어온 공적 이력….

책의 외형적 성취와 이력의 스펙터클이 곧장 그의 입지전을 완성하고 책의 무게를 지탱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것들은, ‘엄숙한’ 자리에서 그와 그의 책을 폄하하는 논거로 동원되기도 한다.(역사학 방법론이 약하다, 정밀하지 못하다 등등.)

이 상반된 평가의 경계에서, 그의 책 18권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 을 펼친다. 제3부 4장의 제목이 <전봉준, 봉기의 불을 당기다> 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노략질-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원한의 표적인 만석보를 허물다’가 4장 단락들의 소제목이고, 4부( <제1차 반봉건전쟁> )의 1장( <무장에서 선포된 창의문)은 ‘팔도 강산이 흔들리다’라는 소제목으로 이어진다. 에세이나 소설의 정취를 풍기는 이이화식(式) 역사 화법은 저렇듯 분방하다. 그는 거침없는 분방함으로 강단 사학의 성채를 허물고 역사를 대중과 소통하게 했다. 90년 <역사비평> 에 발표한 그의 논문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 이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사학계의 관심을 불붙게 한 신호탄이었”(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고, 89년부터 5년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사업을 주도하며 발굴해 엮은 <동학농민전쟁 자료집> 등을 보더라도, 저 유(柔)한 화법이 역사과학으로서의 엄밀성을 희생시킨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흥미를 위해 역사를 타락시켜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지론을 덮어두더라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는 역사와 시민의 경계, 강단사학과 대중의 경계에 서서 양자 모두와 소통하며 포용해온 사학자다.

그의 역사는 지배집단의 역사가 배척해온 민중사를 복원하고, 정치사의 주변부 혹은 외부에 방치된 생활사와 사상사 인물사를 껴안았다. 근대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궤적 위에 덮여있던 이념의 위장막을 걷어냈고, 설화나 민담 등을 사료로 포섭한, 달리 말해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홀로 선취한, 선구적 역사가다. 개화파와 척사파의 대결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의 19세기 풍경화 속에 농민세력을 당당한 제3의 주체로 그려넣은 점(근대편)도 대표적인 사례다. 하위사학ㆍ대항사학적인 이 면모들은 다양한 원전자료의 국역ㆍ해제 이력을 거치며 쌓은 정통 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 노소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주고받은 지적 자양분으로 하여 이지러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역사학 방법론을 ‘소통’이라 하면 어떨까. 원전과의 소통, 사람과의 소통, 역사 기행과 답사로 이어져온 공간과의 소통!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반파시스트 역사학자 크로체의 말도 있거니와, <한국사 이야기> 에도 저자의 음성이 짙게 개입한다. 민중적이고, 개혁적인 지점들에서 특히 그러하다. 고려에 대한 편애는 유난하다. ‘최초의 통일국가’요, 이념ㆍ사상ㆍ종교적 도그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며, 신분의 지배를 벗어던진 역동적 관료제 사회라는 점을 그는 치우치게 평가한다. 또 중화민족주의와 일본 군국주의, 서구 오리엔탈리즘에 맞서기 위해, 또 통일의 끈으로 움켜쥔 (자위적ㆍ포용적)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저자가 자신의 길을 인도해준 스승으로 꼽은 단재 신채호에 대한 비판(독립운동의 도구로서의 역사학)이 어쩌면 그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 물론, 단재에 대한 저자의 변론- “그가 살았던 시대가 다르고….”-이 그에게도 적용돼야 마땅하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시대를 사는 것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지지난 해 청명 임창순(1914~1999) 선생의 유지로 제정된 <임창순 학술상> 의 첫 수상자로 <한국사 이야기> 의 그를 선정하면서 심사위원단은 “수준 높은 학문적 성과를 대중적 향유물로 숙성시킨 역작”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는, 40여년간의 학인의 삶의 노고를 보상 받은 것 같다며 감격해 했다. 하지만 그가 개척한 역사학 연구의 드넓은 터전, 그가 구축한 역사학 수용의 대중적 토대, 무엇보다 그의 사학이 구현한 소? 포용, 다양성, 평등의 가치는 두고두고 기리고 누려야 할 것이다.

2005년 7월에 위암 수술을 받았고, 연초에 아치울을 떠나 새 거처(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인마을)로 이사한 그는, “올해부터 1년 반 기한으로 동학농민전쟁사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숙제가 있다면서 예의 소탈한 웃음 속에 겸연쩍음을 감추며 꺼낸 말이 ‘자서전’이다. “<한국사 이야기> 가 해방공간에서 멈췄어요. 현대사 연구자는 탁월한 분이 많거든요. 그렇지만 내 몫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잘나서 자서전을 쓴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살아낸 시대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에릭 홉스봄이 그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ㆍ민음사> )에 썼듯 “개인의 경험으로 그려낸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 경험의 내용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살피겠다는 의미다. 그의 <한국사 이야기> 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슬프고 아름다운 민족사 쩌렁쩌렁 울리는 강의에 우리는 잠들수 없었죠"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이화 선생이야말로 '작은 거인'이다. 아니 '작은 거장'이라고 할까. '작은 거인'이 그렇게 장대한 한국사를 써냈으니 말이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읽고 진지하게 학습한 저 1980년대를 살았지만, 그 80년대의 한가운데에서 선생은 자유를 구가하는 '재야 한국 사학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우리 출판사는 조그만 방에서 역사 강좌, 사회과학 강좌와 민족사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험하는 역사기행을 기획했는데, 선생은 가장 인기 있는 강사 또는 가이드였고, 형처럼 존경하고 친애하는 연구자였다. 강의 뒤에 벌인 2차 역시 또 다른 역사의 토론장이었다.

역사기행 때 우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국토에서 펼쳐진 민족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으로 호흡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 산하를 쩌렁쩌렁 울리는 선생의 현장 강의가 쉼 없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선생이 주역인 저 아름다운 역사의 축제가 이어지면서, 그의 역사 인식은, 강의 솜씨가 늘듯이 그렇게, 비약적으로 성숙했으리라.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 는 그런 80년대 현장에서의 연구ㆍ토론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작업이다. 그 과정에 우리는 늘 선생의 주변을 맴돌았다. 물론 술이 있어 선생 주위에 몰려든 이들도 있었다. 87년 여름인가 우리는 동학농민전쟁의 또 다른 지도자 김개남 장군의 생가터를 찾아가는 역사기행을 했는데, 나는 선생이 붓으로 '동학농민전쟁 김개남 장군 생가터'라고 쓴 말목을 건네 받아 이미 밭으로 변해버린 현장에 꽂았는데, 지금 그것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흔히 재야 역사학자라고 하지만 그는 이미 제도권 역사학자의 업적을 진정으로 넘어서는 일을 해냈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조직과 운영을 주도하고 수많은 젊은 연구자들과 더불어 한국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것은 아마도 작은 거인의 큰 리더십이었다고 할 것이다.

95년부터 우리가 펴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와 더불어 <한국사 이야기> 는 우리 역사 인식의 균형을 도모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물론 이이화 선생은 우리 역사만을 강조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이 아니라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 이야기> 의 다음 작업을 우리는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이이화 약력 1937년 / 대구 출생

51년 가출 후 고학으로 한영중, 광주고,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다님.

73~75년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겸 국역실장

77~80년 서울대 규장각 해제위원

81~8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

86~96년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 부소장, 소장, 계간<역사비평> 편집인

8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1년 단재상

2005년 임창순 학술상

현재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서원대 석좌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