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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희망 만들기

입력
2006.12.2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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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한 해도 누구에게나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정시 모집 결과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학생과 진작 수시에 합격해 느긋한 학생은 한 하늘 아래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노후 준비는커녕 하루하루 삶이 힘겨운 이가 많지만 아무 노력 없이도 집 한 채가 10억원이 훌쩍 넘은 사람도 있다. 이런 사정을 그럴 듯하게 현학적으로 표현한 말이 동시성의 비동시성이겠다.

사람이 천차만별이고 처한 처지도 하늘 땅 차이여서 세밑 감회도 다 다를 것이다. 한 해가 다 저문 마당에 대통령이 느닷없이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며 좌충우돌하는 바람에 주위를 차분하게 돌아보고픈 마음이 산란해지기는 했지만…. 영어권 사람들이 쓰는 야후에 들어가 보니 '2006 최고의 답변'이라는 코너가 눈에 띈다.

외국 네티즌들은 올 한 해에 무엇을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해결하고자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남자들은 여자가 어떤 머리색에 어떤 눈 색깔일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끼느냐' '이빨 빠지는 꿈을 꾸었는데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 '집안에 새해 장식을 하고 싶은데 그런 장식품을 파는 제일 좋은 가게는 어디냐'는 시시콜콜한 질문에서부터 '세계는 모든 사람을 먹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가''나이가 들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혜안이 생길까'처럼 깊이 있는 물음도 있다.

● 대통령이 망친 세밑의감회

'폭력과 분노와 증오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좋은 답변으로 뽑힌 내용을 보면 "폭력에는 지식으로, 분노에는 이해로, 증오에는 사랑으로 맞서야 한다"였다.

폭력에 지식으로 맞선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도록 해서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고, 분노에 이해로 맞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이 돼서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노력만으로도 분노는 상당히 해소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 인터넷에도 이런 코너가 있다면 나는 '우리에게 희망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올리고 싶다. 그리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채플린이 제작 각본 감독에 주연까지 맡은 이 영화는 '현대'라는 제목 그대로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떠돌이는 현대의 노동자로 하루 종일 컨베이어벨트에서 볼트 조이는 일을 한다. 정신없이 조이다 보니 작업대를 떠나서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여자 치마 엉덩이에 달린 단추까지 조이려다 혼쭐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결국은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된다. 퇴원한 떠돌이는 거리를 방황하다가 시위 군중에 휩싸여 본의 아니게 좌파 지도자로 오인되고 고아 소녀를 만난다.

두 사람은 한 허름한 집에서 부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언제 저런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하고 한탄한다. 둘은 하는 일마다 실패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손에 손을 잡고 밝게 웃으며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간다.

이때 나오는 자막이 "잘 될 거야"다. 사실 잘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

원래 마지막 장면은 떠돌이는 퇴원을 하고 소녀는 수녀가 되어 떠돌이와 영영 헤어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렇게 됐다면 모던 타임스는 그야말로 답답하고 희망 없는 시대의 초상화가 되었을 것이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방대한 저서 <희망의 원리> 에서 온갖 분야와 고금을 누비며 희망의 근거를 천착하지만 그럴수록 희망에서 멀어진다. 반면 85분짜리 이 영화에서 두 남녀는 희망의 근거 찾기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희망에 성큼 다가간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새해에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에 성큼 다가가고 싶다. 해는 또 다시 떠오르지 않겠는가.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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