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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삶, 따뜻한 겨울/소년소녀 가장 등 동화·동시 작가와 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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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삶, 따뜻한 겨울/소년소녀 가장 등 동화·동시 작가와 기차여행

입력
2006.12.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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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방귀를 뀔까요?” “그럼요. 하느님이 방귀 뀔 때마다 천둥이 치잖아요.”

7일 오전 10시, 서울역을 출발해 경기 문산으로 향하는 경의선 열차가 초등학교 읽기 수업 교실이 됐다. 올망졸망 모여 앉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동시작가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김은영(43)씨가 자신이 쓴 동시집 <아니, 방귀 뽕 나무> 를 읽어 준다. “고욤 열면 고욤나무/ 개암 열면 개암 나무/ 오디 열면 오디 나무….” 왁자지껄 떠들던 개구쟁이들이 조용히 동시의 운율에 젖어 든다.

이날 기차여행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가 책 읽기 환경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했다. 여행에 참가한 121명은 서울 강서구에 사는 어린이들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거나 기초생활급여를 받는 가정의 자녀들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여행의 기회가 적었던 어린이들은 한국철도공사가 준비한 관광특급 열차에 올라 타자마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우리에게 꿈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은 어떻게 생길까요?” 동화작가 이상교(58ㆍ여)씨의 질문에 어린이들의 눈망울이 동그래 진다. “책이에요. 꿈은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가꾸어 가는 거에요.” 책보다 컴퓨터 게임이 더 친숙하던 아이들도 작가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조금씩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책이요? 복지관에서 빌려 봐요. 가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사다 주시기도 하고요.” 구김살 없던 조지수(11ㆍ가명ㆍB초교 5년)양의 얼굴에 가족 이야기를 묻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장애인인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벌어오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남짓하다. 세 남매의 막내인 조양은 책을 사달라는 얘기를 꺼내본 기억이 없다. 조양은 여행 내내 김 작가가 선물한 동시집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한성일(11ㆍ가명ㆍS초교 5년)군은 지난해 누나와 함께 보육원에 맡겨졌다. 책을 무척 좋아하지만 한군이 마음껏 책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은 1주일에 딱 한 번, 한 복지단체의 도움으로 독서지도를 받는 시간뿐이다. 한군은 선물로 받은 가방 속에 책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강서구 사회복지사 최정순(31ㆍ여)씨는 “도서관이 늘고 있지만 아직 원하는 책을 마음껏 빌려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요즘 책값이 보통 한 권에 만원이 훌쩍 넘기 때문에 저소득층 어린이들은 사실상 독서문화에서 소외돼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책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이 덜컹대던 열차가 금촌역에 도착했다. 파주 출판단지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기 전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다. 서민우(10ㆍ가명ㆍS초교 4년)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사람들이 읽고 행복해지는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어린 작가 지망생의 표정에 사뭇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파주=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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