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외환은행 매각은 불법이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당시 외환은행이 팔아야 할 정도로 부실은행이 아니었던 데다 단기차익을 노린 론스타에 팔 이유는 더욱 없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검찰은 헐값 매각을 주도한 몸통으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지목했다. 두 사람이 정부의 금융정책 및 절차,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외환은행을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론스타의 줄기찬 로비가 주효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했다.
론스타와 짜고 치기
2002년 중반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대표는 론스타 본사에 투자분석서를 보내면서 “한국에서의 은행 매수는 고수익 투자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건의했다. 이미 국내 은행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론스타는 서울은행 인수에 뛰어들었다가 투기펀드라는 이유로 실패하자 가장 매력적인 투자 가치를 지닌 외환은행 인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변 전 국장 및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과 고교 동문인 살로만스미스바니(SSB) 김모 대표를 내세워 변 전 국장 등에게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변 전 국장과 절친한 하종선 변호사를 로비스트로 활용하기도 했다.
변 전 국장은 애초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같은 해 10월 말부터 점차 호의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변 전 국장은 이듬해 3, 4월 론스타의 예산인 10억달러(약 1조원)에 맞춰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할 수 있도록 매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이 전 행장과 재경부 실무진에게 지시하기에 이른다. 변 전 국장은 그 대가로 하 변호사한테서 4,174만원의 금품을 받았고 나중에 자신이 설립한 펀드에 400억원을 투자하기로 외환은행으로부터 약속 받았다.
이 전 행장은 스티븐 리의 표현에 따르면 “매수인에게 협조적인 아주 드문 매도인”이었다. 이 전 행장을 움직였던 것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에도 이 전 행장에게 계속 행장직을 맡기겠다”는 론스타의 달콤한 유혹이었다. 추후 이 전 행장의 유임 불가 결정으로 이 전 행장이 반발하자 론스타는 경영고문료 명목 등으로 15억8,400만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론스타와 변 전 국장, 이 전 행장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손발이 척척 맞았던 셈이다.
반값에 매각
외환은행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는 부실을 최대한 부풀리고 자산을 낮게 평가하는 방법이 동원됐다. 정부가 보증한 채권은 정상채권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대러시아 채권 이자 353억원을 아무 근거 없이 부실액으로 산정하는가 하면, 현대상선에 빌려준 돈의 손실 추정치를 턱없이 높게 잡았다. 9,000원대에 거래되던 하이닉스 주식을 1,000원 가량으로 계산해 외환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하이닉스 주식의 가치를 3,364억원이나 낮추기도 했다. 외환은행 관계자조차 “통계 자료로 쓰기에는 부적절한 수치”라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외환은행 매각의 결정적인 근거가 됐던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6.16%가 실제로는 적정 기준치 8%를 훨씬 웃도는 9.41%까지 가능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제값을 받고 팔아도 될 외환은행이 거의 반값 수준으로 팔린 것이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