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서(極暑)와 극한(極寒) 지역에 다 같이 적응할 수 있는 민족은 지구상에 한민족밖에 없다고 한다. 한민족의 환경적응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2005년 현재 664만 명의 재외동포가 174개 국에 흩어져 산다.
지구상에서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나라가 191개국이니 거의 모든 나라에 한민족의 핏줄이 퍼져 있는 셈. 중국(244만) 미국(209만) 일본(90만) 순으로 많고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에도 53만 명이 넘는 동포가 산다. 엊그제 한명숙 총리가 다녀온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는 각각 20만, 1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 오지, 태평양이나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까지 그들이 이역만리까지 흘러가게 된 데에는 갖가지 사연이 자리하고 있다. 구한말의 유민, 하와이 사탕수수밭과 멕시코 애니깽 농장 이민, 파독 간호사는 순전히 생계형 진출이었다.
징용 등으로 끌려가 눌러앉은 재일 동포,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한국전쟁포로 중 제3국을 택한 사람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 지역에 흩뿌려진 동포 등은 한민족의 수난사 속에 타의에 의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한을 품고 조국을 스스로 등진 이도 있고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떠난 아이들도 있다.
■ 어제 제주에서 막을 내린 세계한민족축전은 그렇게 고국을 떠났던 동포와 그 후손들이 참가해 고국을 체험하고 한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확인하는 행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이 행사는 올해로 15번째. 그 동안 100여개 국에서 1만2,000명의 재외동포가 이 행사를 통해 고국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41개 국에서 독립운동가 후손 등 갖은 사연을 안고 살고 있는 동포 550명이 참가했다. 특히 낳은 부모를 찾고 싶어하는 입양아 출신들의 간절함이 눈물겹다. 고국방문 행사에서 만나 가정을 이룬 입양아 커플의 얘기도 뭉클하다.
■ 이런 행사에 정부가 뒷짐을 지고 외면했다니 어이가 없다. 행사를 주관하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에 야당 인사가 당선됐다고 해서 문화관광부장관이 전례를 깨고 환영 행사에 참석조차 안 했다고 한다.
정치적 다툼에 이유가 있겠지만 고국을 찾은 동포들을 앞장서 환영하고 위로해야 할 의무를 방기한 처사다. 재외동포는 세계화시대에 소중한 자산이며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아갈 수 있는 통로이다. 실익도 없이 근대적 국경개념에 머물러 고토 회복을 외치기보다는 재외동포들의 잠재력을 통해 한민족의 인적 지경을 넓이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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