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두고두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가 월드컵 심판이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출전하는 축구 축제인 월드컵 무대에서 심판들은 조연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도 그들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오프사이드 휘슬 한 번, 옐로우 카드 한 장에 따라 팀 운명이 엇갈리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월드컵 심판은 각국 축구협회의 추천을 받은 심판 중 대륙별 연맹이 1차로 거르고 나서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위원회가 국제대회 경험 등을 세밀하게 심사해 선발한다. 이번 대회 심판들은 역대 어떤 월드컵보다 어려운 테스트를 통과했다. 5일 동안 40m를 6.2초에 주파하는 스프린트 훈련, 150m를 20회씩 구보하는 강도 높은 체력테스트, 비디오 판정분석 등의 과정을 소화했다. 자질과 관록에서 확실한 공인을 받은 ‘명판관 중의 명판관’들이다.
독일월드컵에 참가하는 주심은 21개국 23명, 부심은 46명, 대기심은 21명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가미가루 토루(43)와 싱가포르의 샴술 마이딘(40)이 주심으로 선발됐다. 이번 대회부터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판정을 위해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대륙 출신 3명의 심판이 한 조를 이루는 ‘트리오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 명의 주ㆍ부심은 정확한 합의판정을 위해 경기 때 헤드폰으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이번 대회 유일한 한국 심판인 김대영(46)부심은 가미가루 토루 주심, 요시카즈 히로시마(44) 부심과 짝을 이뤄 10일 A조 폴란드-에콰도르전을 진행하게 된다.
심판들은 자신들의 몸 뿐 아니라, 동료들의 몸 상태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같은 조를 이룬 주심과 부심2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체력테스트에 불합격하거나 부상으로 경기에 참가하지 못할 경우, 나머지 2명도 ‘연대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지난달에는 자메이카출신 피터 프렌더가스트 주심의 무릎부상으로 앤서니 라우드(자메이카) 부심과 조제프 테일러(트리니다드토바고) 부심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자격기준이 엄격한 만큼 수당도 짭짤해 이번 월드컵 경기에 참가한 심판들은 4만 달러(약3,750만원)씩을 손에 쥐게 된다. 2002월드컵 때보다 두 배 많은 액수이다. 국제경기에 나서는 심판의 나이는 만45세 이하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독일월드컵에선 아쉽게도 독특한 외모 때문에 ‘외계인 심판’으로 불리는 피에르 루이기 콜리나(이탈리아· 46)를 볼 수 없게 됐다. 사상 첫 월드컵 여성심판 탄생도 무산됐다. 예비 부심 후보에 이름을 올린 프랑스의 넬리 비에노가 최종 테스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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