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던 엘리오 쁘라도(36)는 2000년 합법적 절차를 걸쳐 미국으로 이민했다. 브라질서는 연봉이 9만달러(약 8,500만원)에 달한 고수익자였지만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식당서 웨이터로 일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다. “그들(고용주)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쁘라도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9일 “미국에 합법적으로 이민한 고학력자들이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활용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인들이 불법 이민자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이 ‘합법적인’ 영주권자들은 고용시장에서 소외된 ‘투명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분석이다.
미국서 고학력 이민자가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는 것은 일상적 풍경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한 알바니아인은 도어맨으로 일하고 뉴욕서 택시를 모는 방글라데시인은 의사 출신이다. 벨로루스 출신 철학박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점 점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뉴욕의 한 식료품 가공 공장에는 이라크 과학자, 보스니아 의사가 나란히 서서 닭고기를 손질하기도 한다.
이들의 잠재능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미국 기업의 폐쇄성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겉으로는 ‘평등한 기회’를 내걸고 서류를 접수하지만 면접서는 싸늘한 질문이 쏟아지기 일쑤다.
몽골서 미국으로 2002년 이민한 오유카 밧수리(30)에게도 취업 면접은 악몽이었다. “울란바토르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습니다”는 설명에 면접관들은 황당하다는 듯 “어디라고요?”라고 되물었다. “5년간 몽골 주식거래소에서 일했습니다”라고 밝히자 “뭐요?”라는 냉소만 돌아왔다. 그는 미국인과 결혼해 시민권까지 받았지만 회계관련 직종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채 빵집서 일하고 있다.
이 같은 차별의 벽 앞에서 수 차례 좌절한 뒤 자신의 전공과 경력을 포기한 이민자는 부지기수다. 한 민간 연구소 조사 결과 미국인 중 대학 졸업자로서 1만 9,800달러 미만의 연봉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7.6%에 불과했지만 이민자의 경우는 23.6%에 달했다.
모국서 나름의 실력을 쌓아온 이민자에 대한 홀대는 결국 기업과 국가에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대두된다. 상원에 상정된 ‘포괄적 이민법 개혁안’에 따르면 앞으로 10년간 매년 17만5,000개의 그린카드(입국허가증)가 추가로 발급될 전망이다. 이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고학력 인력을 적재적소에 활용치 않고 ‘3D업종’으로 내모는 것은 국가 경쟁력 낭비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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