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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들끓고 넘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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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들끓고 넘쳐서

입력
2006.05.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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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온통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곳곳에 피어 있는 영산홍 빛깔보다 더 진한 빨강이 세상을 뒤덮어 가고 있다. 2002년의 영광과 열광을 다시 누리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들끓다 못해 넘쳐서 흐르는 중이다.

월드컵은 왜 이렇게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가. 축구는 발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가식 없는 수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몸의 예술이며 종교다. 축구 속에 삶이 있고 세상이 있다.

‘시인세계’ 여름호에 ‘공이야기’라는 시가 소개된 프랑스 여성시인 까띠 라뺑은 함께 보내온 산문에서 “발의 투쟁인 축구는 영웅부재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종교나 정치에서 느낄 수 없는 또 하나의 신흥종교이자 소통의 장이자 꿈을 실현하는 무대”라고 말하고 있다.

● 월드컵 열기로 붉게 물든 한국

정도차는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월드컵 기간에는 모든 게 마비된다. 만년 우승후보 브라질은 축구를 통해 국가질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다. 최근 조직폭력배의 관공서 습격사건으로 50여 명이 숨진 브라질에서는 폭동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채 경찰과 조폭 간의 막후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모든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이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거리응원은 다른 나라보다 더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후유증과 부작용도 있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한국인들은 일체감과 다중의 힘을 만끽할 수 있었고 자기표현 방법의 발견과 자신감 획득이라는 큰 경험을 했다. 지금 한국인들은 또 한 번 날고 싶어 한다.

월드컵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예비군 훈련일정이 바뀌는 것 정도는 약과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의 맹목적인 월드컵열광이 역시 문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팝페라 테너로 알려진 임형주가 23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에서 열기로 했던 코리안 포스트 챔버 오케스트라의 창단 기념공연이 취소됐다.

이미 3월 말부터 예매를 해왔으나 같은 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보려고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본경기도 아니고 평가전인데도 그 정도다. 26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 때도 비슷한 피해를 당하는 곳이 있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의 한국경기는 모두 밤과 새벽에 열린다. 그래서 응원용 속옷을 만들어 파는 업체까지 생겨났지만, 어쨌든 그 시간에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2006 월드컵이 2002년과 확실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양성이다. 응원복이 통일되지 않는다거나 응원하면서 부를 노래가 여러 가지여서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세진 상업화의 결과든 월드컵 마케팅의 영향이든 다양해진 것은 좋은 일이다. 일체감이 획일성으로 직결되면 안 된다. 응원복도 꼭 단색의 붉은 색 한 가지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팀이 4년 전처럼 4강에 오르거나 더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선만 다한 결과라면 유감이 없어야 한다. 바둑에서 말하는 승즉흔연 패역가희(勝卽欣然 敗亦可喜), 이기면 매우 기쁘고 져도 또한 즐거워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국가대표팀이 소집된 뒤 기자회견을 할 때 한국팀 전력의 50%라고 히딩크가 칭찬한 박지성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한국팀이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특별히 보완할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허황된 자만이며 착각이다. 박지성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팀을 실제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침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

● 다양성 인정하는 '축제 열풍'을

월드컵은 열풍으로 그쳐야지 광풍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월드컵기간에 생각해야 할 것은 월드컵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그것 말고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많다는 점이다. 모든 부문에서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그리고 너무 빨리 들끓고, 그 결과 넘쳐서 흐르는 게 늘 문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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