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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사무라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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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사무라이 일본

입력
2006.04.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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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놀이가 절정을 이뤘던 지난 주 일본 정계에서는 때아닌 사무라이(侍) 꽃이 활짝 피었다.

대표적인 극우 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제1야당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대표가 엉터리 이메일 폭로사건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자 “그는 진짜 사무라이”라고 칭찬했다. 반면 와타나베 고조(渡部恒三)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폭로사건의 장본인이면서도 스스로 사퇴하지 않아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나가타 히사야스(永田壽康) 의원을 “사무라이답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등 여기저기서 사무라이론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2004년 개봉됐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강렬한 인상때문인지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예찬론이 봇물을 이루어 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야구를 세계 정상으로 이끈 스즈키 이치로(미국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를 ‘사무라이중의 사무라이’로 격찬하는 등 사무라이가 이상적인 영웅상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무라이에 대한 일본 정치가들의 선망은 상상을 넘어선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무라이라고 믿고 있으며, 사무라이가 될 것을 강요받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사무라이론을 곱씹어 보면 사무라이의 핵심적 속성은 바로 명예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사무라이 정치가의 기본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스러지는 벚꽃과도 같은 사무라이의 비장미(悲壯美)는 시공을 초월해 일본 국민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물론 좁은 섬나라에서 숙성된 사무라이 정신은 우리에게 미묘한 정서적 위화감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치가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폐쇄성과 편협성이 대표적인 부정적인 속성이다. 그러나 사무라이를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일본 정치가들과, 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의 정치 풍토가 객관적으로 우리 보다 성숙하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무라이 정신과 사무라이 일본을 보다 꼼꼼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사무라이란 말은 원래 귀족 등 실력자를 보호하는 경호원을 의미했다. 이후 무사(武士)계급 일반의 호칭으로, 또한 무사 중에서도 영웅적이고 위대한 인물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명칭으로 발전했다.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4계급 중 최상층인 사(士)에 속한 사람들이 사무라이라고 불렸다. 성격상 차이는 많지만 우리의 옛 선비를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렀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옛 선비 정신의 부활을 열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만연하고 있는 도덕적 해이 등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부국강병을 외치며 일본을 이끌었던 19세기 사무라이들에게 비참하게 무너졌던 구태의연한 선비 정신으로의 복귀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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