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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적십자사 창립 100돌/ 한완상 총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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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적십자사 창립 100돌/ 한완상 총재 인터뷰

입력
2005.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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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가 27일 창립 100돌을 맞았다.

고종 황제가 1905년 10월27일 칙령 제47호로 ‘대한적십자사 규칙’을 공포, 이 땅에서 인도주의 운동이 시작 된 이래 한 세기가 흐른 셈이다.

그 동안 한적은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던 수혜자의 처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계에서 9번째로 분담금을 많이 내는 기여자가 됐다. 한적 한완상(69) 총재를 25일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한적 총재실에서 만났다.

_한적 창립 100주년을 맞는 총재의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올해는 한적 100주년일 뿐만 아니라 광복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적십자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1905년이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우리 민족이 고통받기 시작한 해와 같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운동의 싹을 제대로 틔우지도 못한 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는 아픔을 겪었지만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하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간호사를 양성하는 등 광복의 희망을 키웠습니다.

또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의 아픔을 달랬고, 경제발전기에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빛을 비추고자 노력했습니다. 적십자 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하며 언제나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서 헌신해 왔습니다.”

_한적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 보상 없이 재난현장과 소외된 이웃을 찾아 헌신하는 자원봉사자가 7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들의 이웃 사랑은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지금도 음지에서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적십자봉사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_최근 혈액 사고로 한적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좀 차가워졌는데요.

“한적은 58년 국립혈액원을 인수해 혈액원을 개설하면서 혈액사업을 시작했고 81년 정부로부터 국가혈액사업을 위탁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매혈(賣血)’을 몰아내고 ‘사랑의 헌혈운동’을 전개해 매년 250만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수혈용 혈액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는 부주의로 인한 혈액 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올 2월부터는 안심하고 수혈할 수 있도록 모든 혈액에 대해 핵산증폭검사(NAT)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혈액사업 독자 기구인 혈액관리원을 신설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혈액사업을 관장하는데 차제에 우리도 정부에서 맡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합니다.”

_남ㆍ북한 화합의 장을 앞장서서 열어왔던 것이 한적이지만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평가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71년 최두선 총재가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처음 제의한 이래 85년 분단 40년 만에 서울과 평양에서 첫 번째 이산가족고향방문단 교환이 이뤄졌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11차례 이산가족상봉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이산가족 숙원을 해소할 면회소도 착공했습니다. 또 2000년부터 북측에 비료와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으며, 2004년 용천역 폭발 사고 때에는 범국민모금 운동을 펼친 적도 있습니다.

항간에 납북자들의 생사확인과 상봉에 미온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사실 오해입니다. 한적의 노력으로 무려 11명의 납북자들이 가족과 상봉했습니다.”

_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다음달 10~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국제적십자사연맹 집행부, 181개국 적십자 대표 등 1,000여명이 참석하는 국제적십자사연맹총회가 열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입니다. 마지막 분단국인 우리나라에 전세계인이 모여 국제적십자운동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세계평화에 대한 결의와 인류애를 나누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축제가 될 것입니다. ”

_마지막으로 한적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지난 100년 동안 쌓은 저력을 바탕으로 향후 100년의 적십자 운동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인간 고통이든, 잘못된 사회제도로 인한 인간 고통이든 고통이 있는 현장에는 그 곳이 어디든 달려갈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인도주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분단 현실 속에서 평화를 위해 더욱 헌신할 것입니다.”

■ 약력

▦1960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 ▦70~76년 80~93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93년 통일부총리 ▦94~98년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99~2001년 상지대 총장 ▦2001~2002년 교육부총리 ▦2002~2004년 한성대 총장 ▦2004년~현재 한적 총재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韓赤과 남북관계

이산가족문제부터 대북지원창구 역할까지 대한적십자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1971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구상 선언(1970년)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화책으로 바뀌면서 한적은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북적)에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제의했다. 72년 8월부터 73년 7월까지 7차례 본회담이 열렸지만 성과는 없었다.

84년 여름 남쪽을 강타한 수해 직후 북적이 한적에 구호물자 지원을 제안하고 남쪽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이어 85년 9월 이산가족 고향 교환방문이 성사됐다.

100명씩의 상봉단이 3박4일 동안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상징적 행사였지만, 한적의 역할을 각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본격적 활동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8월 열린 1차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으로 11차례의 행사를 통해 남북 1만1,100명의 가족이 반세기 이상 쌓였던 한을 풀었다.

한적은 9만8,000여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신청자를 관리하고 있고, 올들어 시도별 지사에 설치된 이산가족 화상상봉센터를 통해 화상상봉을 실시했다.

연말까지 2차례 추가 화상상봉이 예정돼 있다. 또 2000년 이후 6차례의 남북 적십자회담을 통해 대북 비료지원,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문제 등을 다뤘다.

한적은 정부가 하지 못하는 역할도 한다. 95년부터 대북 지원창구 역할을 맡아 민간단체가 기탁한 성금 및 물품을 전달해왔고, 비료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북한 용천역 폭발 참사가 발생하자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을 전개, 222억원 상당의 복구 자재 및 장비를 지원했고 민간부문에서 기탁한 115억원 상당의 구호물품도 전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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