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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목격 외국인 증언록 첫 공개/ "日人들, 궁녀들 머리채 거머쥐고 창문밖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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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목격 외국인 증언록 첫 공개/ "日人들, 궁녀들 머리채 거머쥐고 창문밖 던져"

입력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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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한 외국인의 증언록이 처음 공개됐다.

LG연암문고는 11일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세계문학연구소 김려춘 교수가 최근 러시아제국 외교고문서관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 목격기를 발견해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목격자는 고종이 고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 세르진 사바친으로, 1894년 8월부터 사건 당일인 이듬해 10월8일까지 경복궁에 살았으며 사건 뒤 중국 산둥으로 피신했다. 다음은 사바친이 남긴 시해 장면 목격담.

‘거처에 조선 육군중령 이가균이 뛰어들어와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했다고 알려왔다. 새벽 5시 궁궐 공격이 시작됐다. 북동문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유창한 연설로 보아 사전연습을 해둔 것이 분명했다. 궁궐을 지키던 위병들은 총을 버리고 사방으로 달아났다. 나는 황후전(건청궁)에 있는 두개의 문 앞을 지키는 5명의 일본인 보초병과 장교 한 사람을 봤다. 마당에는 훈련대 소대와 오동나무 문장이 들어 있는 일본 옷이나 양복을 입은 20~25명가량의 일본인이 있었다. 일본인에 붙잡힌 내가 황후전 마당에 서 있을 때, 일본인들은 궁녀 10~12명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끌어낸 뒤 창문 밖으로 던져 마당으로 떨어뜨렸다. 궁녀들 중 그 어느 한 사람도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는 완전한 침묵 상태였다.

황후전 마당에 머문 15분의 마지막 순간 일본인 5명이 시뻘개진 얼굴로 사납게 외치면서 황후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떤 궁녀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달려 나왔다. 일본인 한명이 내게 황후의 거처를 물었다. 나는 황후의 얼굴을 본 적도 없다고 변명했다.’

연암문고 관계자는 "사바친의 증언록은 한일 당사국을 제외한 외국인이 현장을 보고 남긴 유일한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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