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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前한양대 교수 대담형식 자서전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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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前한양대 교수 대담형식 자서전 '대화'

입력
200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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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입니다. 인간은,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항하는 지식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리영희(76) 전 한양대 교수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남김없이 풀어낸 ‘대화’(한길사 발행)를 냈다.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져 몸의 오른쪽 절반이 마비된 데다, 사고(思考)까지 혼미했던 그가 2년여 작업을 거쳐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냈다는 건 그의 지성이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몸이 거의 정상을 회복했지만 아직까지 오른손 떨림과 손가락 마비가 풀리지 않아, 손수 글쓰기는 힘겹게 엽서 한 장 적는 정도다. 15일 경기 군포시 자택에서 만난 기자에게 악수하자며 건넨 손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 "자서전"이라고 부르는 이 책이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대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개인사를 자기 손으로 적기보다 삶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타인과 비판적인 토론 방식으로 다루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책은 한국전쟁 시기부터 "지겹도록 혐오스러운" 7년간의 군복무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자유로운 인격체로 1950년대 중엽부터 언론인과 대학교수, 사회비평가와 국제문제 전문가로 활동한 사적이면서 한편으로 매우 공적인 기록이다. 그는 "내가 살아온 75년이라는 세월은 최근 몇 해를 제외하면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고 돌이킨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 문제작으로 언론계와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 쫓겨나고, 5번의 구치소 생활에 3년 옥고를 치른 그다.

"박정희 정권 때도 힘들었지만 정말 앞이 캄캄했던 건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는 그는 "그때 ‘지식인이 자살할 수도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자, "70년대 후반 중앙정보부에서 학생운동 대처 팸플릿을 만들면서 대학생들이 많이 읽고 또 크게 영향 받는 책 50권을 뽑았는데 1번이 ‘전환시대의 논리’이고 2번 역시 내가 편역한 ‘8억인과의 대화’였고 박현채 송건호 선생의 책에 이어 5번이 ‘우상과 이성’이었다"며 "그런 책 덕분에 해직과 투옥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밥 먹고 살았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김영삼 정권은 군부라는 폭력장치를 제거한 공로를,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과 남북화해공존정책의 큰 길을 연 것을 높이 평가한다"는 그는 "노무현 정권은 그런 기반 위에서 여러 개혁을 진행하고 대미 외교에서 주체성을 보이는 점에서 그만하면 잘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의 중추가 된 70, 80년대 학번은 과격한 것, 조급한 것, 타협은 일절 배격한다는 지난날 운동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며 "의미심장한 변화란 원래 다급하게 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유와 너그러움, 더 큰 지혜를 가지고 해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책에는 그가 몸으로 겪은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장면장면이 생생하다. 개인적인 행복 추구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 과거에는 참여 지식인의 고뇌가 묻어난다. 이 책은 우리 최근사의 중요한 대목을 꼼꼼히 복원하다시피 한 임헌영 소장의 질문과 병중에도 맑은 정신으로 사회사와 개인의 역정을 적절하게 엮어낸 리영희씨의 대답이 어우러져 훌륭한 한 편의 한국 현대사로 읽기에 충분하다.

군포=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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