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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문화전망] (2) 출판/ 불황 돌파구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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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문화전망] (2) 출판/ 불황 돌파구 없나

입력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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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실용서가 많이 팔린다느니, ‘다 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라느니 이런 이야기를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인문사회과학 출판 시장이나 수준 높은 교양서 시장은 다 죽어가고 있단 말입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첫 마디부터 편치 않은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올해 출판계 전망을 듣자고 기자가 전화했을 때 마침 한국일보가 신춘기획으로 4일자에 보도한 ‘한국인은 어떤 책 읽나’ 기사를 봤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지난해 평균 6.6권을 읽었다고요. 생각보다 많네요. 하지만 이대로 두고 보다가는 정말 가치 있는 출판은 살아 남지 못할 겁니다. 그런 소리를 더 소리 높여서 해 줘야지요."

한국일보가 국내 대표 출판인 10명에게 올해 출판계 주요 현안을 설문조사한 결과, 출판인들은 인문교양서 출판이 고사위기에 있고 이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출판시장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며, 실용서가 제외되면서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질 것이라는 데도 대체로 같은 의견이었다.

설문은 (1)올해 출판시장 전망 (2)인문출판시장 타개책 (3)도서정가제 평가 (4)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행사 준비 방안 등이다. 답한 출판인은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 ▦일지사 김성재 사장 ▦민음사 박맹호 회장 ▦현암사 조근태 사장 ▦한길사 김언호 사장 ▦창비 고세현 사장 ▦한울 김종수 사장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사장 ▦웅진닷컴 김준희 사장 ▦휴머니스트 김학원 사장 등 10명이다.

◆ 1. 도서관 지원·출판은행 필요하다 = "기초학문 분야의 학술서를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서 출판은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출판인들은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활성화’를 최우선 대책으로 꼽았다. 정진숙 회장, 김성재 조근태 고세현 김종수 김준희 사장 등이 한결 같이 도서관 도서구입비 증액, 인문사회과학도서 구입비 할당제, 공공도서관 신설 및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화관광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 문화부 이성원 문화정책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2004년 도서관 자료구입비 지원액은 134억원 정도인데, 새해부터 지방사업으로 이양되기 때문에 지원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답했다.

좋은 책 만들겠다고 욕심 내는 젊은 출판인들을 돕는 금융지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강맑실 사장은 인문교양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소자본 독립 출판사들에 제작비를 지원하는 출판은행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뒤 "대학의 인문교양 강좌를 필수과목으로 정한다든지 하는 새 독자 창출 대책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문서 시장이 고사위기라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 출판인도 있었다. 김성재 사장은 "인문서 시장이 무너진 채로 숨을 죽이다시피 할 것이나, 책다운 책을 내려는 출판인다운 출판인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숨이 끊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맹호 회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인문서 시장이 존폐 위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다른 분야의 시장이 상대적으로 커졌을 뿐이다. 각종 실용서나 소프트한 독서물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한편에서 수준 높은 인문서는 꾸준히 출간되고 있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문교양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김학원 사장은 "철학과 신입생 수가 줄거나 인문서가 덜 팔리는 것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해서는 안 된다"며 "중요한 것은 인문학을 보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길 찾기"라고 말했다.

◆ 2.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 대형할인점 등에 저가로 도서를 공급하던 유사 도매점들이 지난해 여러 곳 부도나면서 도서유통쪽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다. 올해부터 실용서에 대한 도서정가제가 폐지되면서 출판유통시장이 더욱 혼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용서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가제 폐지를 원하는 쪽에서는 편법을 통해 거의 대부분의 책을 실용서로 분류해 판매할 것이고 따라서 정가제의 유명무실화가 가속될 것"(정진숙 조근태 김종수)이라는 걱정이 다수다. 김성재 사장은 "인터넷을 통한 도서판매에 할인을 허용한 문화부 도서정가제 세부지침과 자기만 많이 팔겠다는 일부 출판업자의 욕심이 맞아떨어져 도서정가제는 지난해에 이미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김준희 사장은 "도서정가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준 건 사실이나 오프라인 서점의 위축과 지방서점의 붕괴를 가져왔다"며 "지금까지의 시행결과를 점검하고 보완책을 논의해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박맹호 회장은 "인터넷 서점 등의 등장으로 도서정가제의 의미는 이미 퇴색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며 "질 좋은 책은 가격경쟁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학원 사장도 "사람의 가치도 시대와 나이, 역량에 따라 달리 평가되는데 책이라고 평생 같은 가격을 달고 다녀야 할 이유는 없다"며 "도서정가제의 혼란으로 책의 질적 저하나 가격상승 효과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출판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정가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출판관, 가치관으로 인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 3. 창의적인 프랑크푸르트 전시 준비해야 = 올해 국내 출판계가 치를 큰 행사 중 하나인 제57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 준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한국의 책 100권을 급히 번역한다고 법석이지만 부실 번역으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김성재) "아동 인문 문학 등을 주로 하는 출판사끼리 모여 분야별 컨셉을 짠 후 창의적으로 개별 전시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별 움직임이 없어 답답하다"(강맑실)

김종수 사장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문화교류보다 저작권을 사고파는 시장이기 때문에 많은 출판사들이 기획, 출판한 수많은 타이틀을 요령?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본적인 서지정보(영어판 유통도서 총목록), 수출 가능성 있는 책들의 목차나 요약본, (문학작품의 경우) 작품 일부를 번역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졸속으로 번역된 책보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전시하는 것이 한국의 출판문화를 보여주는 데 더 나을 것"(김언호)이라거나 "디자인이 뛰어난 문예물, 도판이 많은 인문서 등을 골라 전시하면 효과적일 것"(김성재)이라는 제안도 있었다.

김학원 사장은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아시아의 자부심’을 앞세워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며 "한국의 출판사와 독자가 세계화시킨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주빈국 행사의 프랑스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식의 발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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