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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상생의 길/ (中) 중도의 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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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상생의 길/ (中) 중도의 세력화

입력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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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침묵하는 다수’로 불리던 중도 그룹의 세력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목소리 큰 양 극단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하던 이들이 이념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균형과 타협, 실용 등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탄핵과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 등으로 2004년이 대결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와중에 이들의 결집은 확산됐다.

우선 정치권에서 이런 움직임이 활발했다. 열린우리당에선 지난해 11월1일 발족한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이 대표적 중도성향 그룹이다. 유재건 국회 국방위원장을 대표로, 안영근 조배숙 정장선 김명자 의원 등 28명이 회원인 안개모는 당내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유재건 대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수평적이고 안정적인 당을 만들기 위해 천칭과 같은 무게중심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개·폐 등 이념공방의 한 가운데서 태동한 안개모는 실제 국보법의 대체입법을 주장하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지난해 10월2일 출범한 ‘일토삼목회’도 비슷한 성향이다. 문희상 김진표 의원 등 참여 정부의 관료 및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의원 40여명이 참여한 일토삼목회는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를 완충하는 중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광재, 서갑원 의원 등 친노(親盧) 386이 주축이 된 ‘신 의정연구센터’가 경제문제에 집중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 행보를 보이는 것도 큰 틀에서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당 정체성을 좌로 한 클릭 이동시키자"는 주장이 소장파를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건전 보수’라는 중도파의 세력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 이른바 개혁 소장파가 주축인 ‘수요모임’은 물론이고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의원이 참여하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도 중도보수 성향이다. 실제 이들은 국보법 대체입법도 가능하다며 보수 편향 노선을 탈피하는 행보를 보였다. 박진 임태희 의원의 ‘푸른정책연구모임’과 강재섭 맹형규 의원이 이끄는 ‘국민생각’도 중도 성향을 표방한다. 홍준표 의원은 "극단을 털어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할 것"이라며 "당내 중도보수 노선이 갈수록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밖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신보수) 운동도 넓은 의미에서 중도로 분류하는 이도 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386 운동권 출신 주축의 ‘자유주의연대’(회원 80여명)와 서경석·김진홍 목사가 주도한 ‘기독교 사회책임’(회원 700여명) 등이 그것이다. 물론 자유주의연대의 기본적 지향은 ‘우파 혁신’이지만, 수구 보수를 부정한다는 측면에서 중도와 공통분모가 없지 않다.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우리사회를 1(좌)~10(우)의 스펙트럼으로 봤을 때 우리는 6을 지향한다"며 "그 동안 2~8을 오가며 극심하게 흔들리는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4~6의 진폭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석 목사는 "극심한 좌우 양극화를 바로잡아야만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기독교 사회책임을 출범하게 됐다"며 중도를 강조했다.

이밖에 최근 고건 전 국무총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여야의 잠재 대권주자가 ‘실용주의’를 강조(우리당 정동영)하거나, 중도에 공감(한나라당 이명박 손학규)하는 현상도 중도의 세력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우리사회 양대 축이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이를 공존과 상생으로 이끌며 균형을 찾아가는 리더십이 구축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때문에 명분과 실익을 어떻게 동시에 찾을 지에 천착하는 생산적 제 3의 길, 즉 중도로 표현할 수 있는 노선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학계의 '중도'/ "이념 지양" 자유·중도주의 학자층 두터워져

한국사회학회는 지난해 12월 10, 11일 연 후기사회학대회의 대주제를 ‘한국의 사회변동과 사회통합’으로 잡았다. 지금이야말로 갈등과 반목, 정쟁과 시비, 다툼으로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화합과 통합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어느 누구도 중도를 자처하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이미 이념을 앞세우지 않고 건전한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로 현실을 바라보고 대안을 내놓는 학자층이 두텁다. 이른바 ‘(고전적) 자유주의자’로 아우를 수 있는 학자들이 함께 모여 현실문제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후기사회학대회는 이런 집단의지의 산물이다.

"2005년은 중도와 통합이 화두가 될 것이다"(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학), "이미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김호기 연세대 교수·英맨?는 지적처럼 올 한해는 사회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명제에 충실하면서도 갈등을 지양하고 상생을 추구하는 길을 모색하려는 논의들이 어느 때보다 활발할 전망이다.

새해로 넘어온 여러 개혁법안 같은 정치권의 핵심쟁점은 답이 너무 뻔한 싸움이거나 기껏해야 지엽적인 사안일 뿐이다. 그보다 "불교의 중도적 실천, 자본주의의 요구와는 다른 공동체운동이나 세계시민운동에 기대를 건다"(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사회학)는 주장처럼 개인이나 윤리차원의 근본적인 자유주의를 모색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한 화두다.

올해 불황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여 경제정책을 둘러싼 토론도 자유주의 중도주의를 지향하는 학자들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정부도 시장도 모두 불완전해 정부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실패가 모두 존재하므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경제에 개입하는 시장과 정부의 비중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는 지적처럼 경제현안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정책 처방을 찾기 위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념이 아니라, 이성과 대화의 ‘힘’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역사속의 ‘중도’

중도(中道)라는 말은 2,500여년 전 석가모니에게서 유래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후 5명의 제자에게 한 첫 설법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중도라는 말이 나온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의 길이 있는데,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두 가지 극단의 길이란, 하나는 육체의 요구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향락의 길이요, 또 하나는 육체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수행자는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배워야 한다."

싯다르타는 출가 후 6년간의 고행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이를 버리고 중도의 길을 택해 깨달음을 얻었고, 고행을 같이 했던 동료로 그에게 귀의해 제자가 된 5명의 비구에게 행한 첫 설법에서 이를 밝힌 것이다. 석가모니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념(正念), 정정(正定) 등 팔정도(八正道)가 중도의 내용이라고 했다. 석가모니 입멸 이후 불교 사상가들은 유(有)와 무(無), 개인과 전체,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등 무엇이든 양 극단에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않는 중도의 삶을 가르쳤다.

중도와 비슷한 중용(中庸)은 유가사상의 핵심 개념이다.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요 임금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대 중용사상의 핵심을 정리해 ‘중용’을 지었다. 중(中)이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음,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음, 기쁨 슬픔 등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등을 말하며, 용(庸)은 변함없음(平常, 不易)을 뜻한다.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중심사상의 하나이기도 하다. 덕(德)은 과잉과 과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에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가령 쾌락의 과잉과 과소는 방탕과 무감각이며, 그 중간에 절제의 덕이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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