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 경제의 기본적인 역동성에 대한 믿음으로 항상 낙관적이었던 필자에게도 요즘 경제는 확실히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형 뉴딜이 준비되고 있다. 국민연금과 민간자본을 동원하여 SOC와 생활기반시설에 투자를 하겠다는 종합투자 계획이다. 물론 내수 부진 하에서 매년 국민소득의 거의 10%를 강제 저축시켜 100조 이상 쌓아두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인다. 또한 SOC뿐만 아니라 교육·의료·복지 관련 시설을 확충하겠다는 데에는 고민의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감동은 없다.뉴딜은 카드게임에서 판을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미국 사회의 정체성은 뉴딜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비정한 카우보이 자본주의는, 뉴딜을 거치면서 ‘잊혀진 사람들’까지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통합하는, 그래서 최소한의 사회적 연대 원리가 작동하는 오늘날의 미국자본주의로 전환되었다. 진정 뉴딜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판을 새로 시작한다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루즈벨트의 뉴딜은 노동자, 농민 등 잊혀진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였고 국민 복지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표명함으로써 정부가 국민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믿음과 희망을 제시하였다. 10.29 조치로 막아놓은 건설경기를 기업도시와 SOC투자로 부양하겠다는 한국형 뉴딜은 어떤 새로운 판을 짜서 국민을 감동시킬 것인가?
하버드 대학의 로드릭 교수에 따르면 공공 부문의 안정적인 일자리는 개방으로 외부적 리스크가 커지는 데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외부 시장에 대한 개방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공공 부문의 고용 비중은 커진다고 분석하였다. 글로벌화에 따른 개방으로 수출제조업대기업 부문과 내수자영업 부문간 양극화가 심화되어 내수침체가 구조화하고 있다면, 공공부문의 안정적 일자리로 소득과 소비의 안전판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보건복지·의료·공공행정 등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 비중이 OECD 국가평균 24%의 절반인 12% 수준이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사회서비스 노동이 사회화하지 못하고 개인과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이 노인 간병 문제를 갖고 있고, 엄청난 사교육비 및 보육 부담을 고스란히 개인이 떠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사회서비스 노동을 개인과 가정이 아닌 시장과 사회의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영역을 시장에만 맡길 경우 저임금·저숙련 일자리의 거대한 저수지를 형성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 서비스 영역 고용창출 정책은 정부가 사회서비스 관련 지출을 늘려 국민복지를 높인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숨어 있는 사회서비스 수요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 총수요를 확대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더불어 성장잠재력을 높인다는 의미도 가진다.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고 기계장비를 더 투입하는 것보다 고숙련 인력을 더 활용하고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더 높이는 것이 고진로(high road)의 성장잠재력 제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박정희식 동원에 의한 고도성장’이라는 정체성밖에 가지지 못했다. 한국형 뉴딜은 건설경기 부양 여부에 웃고 우는 경제를 복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역경이란 한편으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형 뉴딜은 새로운 메시지로 국민에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공공부문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공적 영역을 확대할 때이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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