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장재화 글/김형언 그림
나라말 발행/8,500원
우리의 고전소설 ‘박씨전’은 남자를 능가하는 빼어난 재주를 갖고도 하도 못생겨서 구박 받던 박씨 부인이 놀라운 신통력으로 남편과 시집을 돕고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이야기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17세기 후반에 씌어진 이 작품에서, 박씨 부인은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 군대를 혼쭐 내고 적장을 죽이는 맹활약을 한다.
조선의 굴욕적 패배로 끝난 병자호란의 역사적 사실을 떠나 이러한 설정은 비록 허구일 망정 통쾌한 대리만족을 안겨줬을 것이다. 특히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이 지배하던 그 시절, 남자를 부끄럽게 할 만큼 대담하고 걸출한 박씨 부인의 이야기에 당시 여인들은 속이 다 시원했을 터. 그런 연유로 ‘박씨전’은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양반가에서는 금서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는 ‘박씨전’을 중고생이 읽기 좋게 다듬은 것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펴내는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의 네번째 책으로 나왔다. 동화나 축약본이 아니라, 원전에 충실하게 옮기면서도 한자투성이 옛 글의 어려운 낱말과 표현을 조금씩 손질해서 학생들이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꾸몄다.
책 제목은 박씨부인이 날 때부터 지닌 오랜 액운이 끝나 허물을 벗고 절세미인으로 변한 뒤, 그제서야 자신을 찾아온 남편을 꾸짖는 말이다. 박씨부인은 ‘아내의 얼굴이 못났다 하여 삼사 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그대가 어찌 덕이 있다고 하겠느냐, 사람 보는 눈이 그래서야 어찌 효와 충을 알 것이며, 백성 다스리는 도리를 알겠느냐’ 며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시쳇말로 ‘너 같은 쪼다는 별 볼 일 없다’는 소리다. 17세기 조선에서 이런 질타를 듣고도 거북하지 않을 남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고전을 읽으라고 권해도 재미가 없으면 듣는둥 마는둥 넘길 텐데,이 소설은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게 재미있다. 줄거리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옛 사람들의 웅장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판타지적 요소다. 신통력으로 먼 앞날을 내다본다든지, 신선의 도술을 부려 구름을 타고 축지법을 써서 먼 거리를 단숨에 날아가는가 하면, 집안에 울창하게 가꾼 나무들이 일제히 갑옷 입은 군사로 변해 적군을 치는 장면 등 환상적인 스펙타클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 내용은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서양식 판타지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들에게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고, 한국적 전통의 고유한 색채를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박씨전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조선시대 생활상을 소개하는 코너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혼례, 박씨부인처럼 당당하게 살았던 조선의 몇몇 비범한 여인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병자호란의 실제 역사 등을 소개했다. 또 책 말미에 이 소설의 시대적 의의와 한계를 짚어보는 해설을 붙임으로써 흥미거리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 독서가 되도록 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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